정 준 영 (회계사)
우리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는 것, 그 것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기 시작한다는 징조다. 암이 무서운 것은 아픔이 없이 진전되다가 어느 순간 아픔이 오면 순간적으로 죽음이 동반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마지막 1년여를 폐암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마지막까지 진통
제로 아픔을 망각하기를 거부하시고, 아픔 속에서 그 병의 치유를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한 달여를 남기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셨던지, 진통제 투여를 용납하셨다. 그 순간 이미 삶은 포기하신 것을 느꼈다. 본인이 의사라서 그 사실을 더 확연히 느끼셨을 것이다. 인생에 아픔이 없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인생의 아픔을 마취제로 마취시키고 살아가다가는, 언젠가는 그 아픔을 잉태한 것에 의해 삶이 먹혀버린다.
괴로움을 술로 달래고 마약으로 잊고 결국은 인생 자체를 파멸시킨다. 아픔을 느껴야 할 때, 그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것도 생을 사랑하는 사람의 길이다. 인간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아픔, 그 아픔을 망각이나 무관심으로 마취시키려 한다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없다. 그 관계에서 오는 삶은 파괴당한 것이다. 많은 부부가 이혼을 한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아픔을 감당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외도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각,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으로, 그 모든 아픔들이 현 시대에서는 용납되어지기 힘들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인간이기에 그런 실수도, 잘못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많은 이들의 삶이 더 크고 풍요로운 것을 느낀다. 의술이 발달해 조금의 아픔도 없이 수술도 하고, 통증도 전혀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육신의 통증과 아울러 작은 영혼의, 가슴의 통증도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사랑도, 긍휼함도 식어간다. 용서도 사라진다. 마취의 위로는 거부해야 한다. 조금씩은 아파할 줄 알 때, 우리의 인생은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누군가가 그 고통을 덜어 드리고자 쓸개 탄 포도주를 드린다. 예수님은 그것을 마시지 않으신다. 쓸개즙은 마취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 고통이 마취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고통을 피한다면 그 분이 죄인 된 인간들을 사랑하는 가슴은 가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가끔씩은 큰 아픔도 견딜 수 있는 삶들을 살았으면 한다. 자녀들을 위해, 서로의 배우자를 위해 이웃을 위해 그들이 나에게 준 아픔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고 있는 아픔을 내가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아픔으로 인해 내가 눈물 흘리고 대신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면 한다.
그런 삶은 사랑이 있는 삶이기에 살아있는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고, 용서가 있기에 귀한 삶이다. 진주가 살을 쪼개는 아픔 속에서 태어나듯 아픔을 견딜 때, 인생의 그 진정한 의미를 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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