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부르고스 시내
드디어 여름이 되어 딸은 스페인의 살라망카(Salamanca)에 스페인어를 배우는 데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스페인 영사관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살라망카는 언어 교육을 위한 학교로 유명한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개인집에서 하숙을 하도록 결정 하였습니다. 기숙사에 있으면 재미는 있지만 수업만 지나면 아이들끼리 영어로 떠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르도에서 우리 여자 둘이서 자동차로 살라망카로 향하였습니다. 고등학생인 딸이 시원스럽게 운전을 하여 너무나 편했습니다.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였지요. 벌써 그렇게 자란 것이 너무나 대견해 보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의 영토로 들어서니 자동차 수가 현저하게 줄더군요.
북 스페인의 풍경은 산과 초원이 많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간에 한 주유소에서 다리도 좀 뻗고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작은 접시에 조금씩 담아 놓았는데 이것을 이 사람들은 타파스(tapas)라고 부릅니다. 조금씩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고 배가 고프면 하나나 두 접시를 더 먹으면 되니 참 편리하지요. 문어 다리로 만든 음식, 감자를 사프론(safron)이라는 양념으로 노랗게 물들여 만든 음식, 야채로 만든 음식, 동그랗게 만들어 튀겨 놓은 음식 등등 이탈리아식 안티파스티(antipasti-전채요리)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맛이 어떨지 모르니 우선 몇 가지만 시켜 맛을 보았습니다.
한 두 가지 집어 먹고 보니 생각지도 않게 썩 잘 만든 것이라 우리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골고루 여러 가지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음식과 같이 주로 올리브 기름으로 요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어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느긋이 앉아 있다가 만족한 기분으로 지도를 폈습니다. 날이 어둡기 전에 부르고스(Burgos) 라는 곳에 도착하면 거기서 하루를 묵기로 하였습니다. 지도에 좀 큰 도시처럼 나타나 그냥 정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시내 중간으로 표시된 곳을 향하여 가서 괜찮아 보이는 호텔로 들어가 방을 구했습니다. 작은 광장에 교회가 있고 언덕 편에 위치한 엘씨드(El Sid)라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광장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호텔이었습니다.
마침 교회에서 나오는 결혼식 행렬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동안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나도 저렇게 백년해로를 약속했었는데!’ 마치 얇은 얼음장 위를 걷는 듯한 저의 결혼 생활이 언제 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딸이 다가와 기대며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내가 항상 엄마를 돌봐 줄게.” 저는 눈물이 나지 않게 하려고 가라앉는 마음을 달래며 아무렇지 않은듯, “으흥..” 하고 씩씩한 척 대답을 하였습니다.부르고스는 옛날 유적이 이곳저곳 산재해 있는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라 우리는 우연한 횡재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뭐 들어 보지도 못한 시골인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차림새가 아주 세련되고 멋이 있어 놀랬습니다. 이런 예술품이 산재한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자라면서 보는 게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동네 사람과 많은 관광객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북적거렸고, 보이는 카페에는 모두 손님으로 붐비었습니다.
나이든 여자들이 모두 단정하게 차려 입고 여럿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광경이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참 곱게 늙는 사람들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단기간이지만 이렇게 스페인에 와서 새롭게 느낀 것은 이곳 사람들이 상당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광장에 다르니 마치 전 시내 사람들이 몽땅 다 나온 것처럼 사람으로 웅성거렸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 휩쓸려 슬렁슬렁 걸으며 구경을 하였고 광대의 묘기를 재미나게 구경하기도 하였지요. 북구에서 볼 수 없는 낙천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느즈막히 밤 아홉시 반 정도가 되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그렇게 늦게 저녁을 먹는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다 나와 먹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니, 저 애들이 아침에 학교 어떻게 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몇 레스토랑을 기웃거리다가 외국인이 없고 스페인 사람들만 바글거리는 집의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의 음식을 표시 안나게(?) 훑어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단연 새로 맛을 들인 타파스를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낮에 먹은 집과는 또 다른 여러 가지 타파스였습니다. 훈제된 정어리 양념한 것, 지진 생선 토막에 짭잘한 올리브와 케이퍼를 다져 뿌린 것, 커다란 콩으로 만든 샐러드, 찜을 한 고기 덩어리, 풋 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낸 토르티야(감자를 넣고 팬에 두툼하게 익히는 달걀찜) 등 무척 다양하였고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타파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다 덮히도록 여러 가지를 시켰습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맛있는 타파스 접시를 천천히 하나씩 비
웠습니다. 접시를 모두 비웠는데도 아직 모자라는 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 두 가지만 더 시킬까?” 하고 윙크를 했더니 딸이 함박웃음으로 답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도착한 살라망카는 정말 아름다운 옛 도시였습니다. 외국 아이들이 그 곳에 많이 모이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숙집 여자 씨뇨라 암파로는 저 보다 훨씬 젊은 여자였고 아파트도 깨끗하고 괜찮게 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해 프랑스어로 대화를 겨우 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전 처음으로 하숙생을 받아 본 것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마음에 들어 딸을 놓고 오는 것이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방학 후에 딸이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는 혀를 위와 아래의 이 사이에 대고 “트” 소리를 내는 완전한 스페인 본토 발음을 냈습니다. 뉴욕에서 흔히 듣는 스페인어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씨뇨라 암파로가 자주 만들었다는 샐러드에 복숭아 같은 과일 저며 넣은 것을 즐겨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미성년자라 못 들어가는 디스코 재미가 꿀맛이었는지 스페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김영자의 블로그: www.yongjakim.blo gs po
t.com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