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7년 하와이 쓰나미 취재 도중 29살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스타블루틴지의 한국계 언론인 사라 박(사진)이 지난달 30일 언론박물관인 뉴지엄(Newseum)에 헌액되며 그녀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인 로베르타 장 선생이 고인을 회고하는 글을 스타불루틴지에 기고해 이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저널리스트 사라 박은 내가 언제나 목표로 했던 인물이었다.
아니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아닌 인생을 즐길 줄 알지만 진지하고 정직한 태도로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물로서 말이다.
내가 하와이대학에 1학년으로 입학하던 1949년 당시 박씨는 ‘베타 베타 감마’라는 이름의 여학생 클럽의 자문이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녀를 처음 만날 당시 근사한 노란색 컨버터블을 타고 내 앞에 나타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저녁이 되어 그녀가 나를 집에 데려다 줄때 지붕을 연 스포츠카를 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뱅글스 앤드 비즈’를 들으며 마우날로아 하잇츠를 내려오면서 나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박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웃으며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었다.
그날 밤 이후 사라 박을 만날 수 없었고 나중에 그녀가 1950년 한국으로 파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씨가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나는 이미 하와이대학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코, 뉴욕, 그리고 한국등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고 지금 2년째 집필 중인 하와이 한인들에 대한 후기 작품에 그녀의 이야기를 실을 예정이다.
박씨는 1950년 한국전 당시 파견근무 중 김 구 선생이 저격당하던 자리에 있던 첫 언론인으로 기록됐다. 그녀는 누가 김 구를 저격했는지는 보지 못했으나 선혈이 낭자한 그의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김 구의 죽음을 전 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저격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온갖 설이 분분했었고 박 씨는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하와이 출신의 장병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김구의 죽음을 목격한 당시의 상황을 3년 후 기사로 작성하기도 했다.
박 씨는 훗날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함께 처음으로 이승만 박사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었고 동행한 한인들이 이 박사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하와이에 돌아온 후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파들은 한국 입국이 번번이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총영사관을 찾았을 때 이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직접 심문을 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어야 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이 대통령을 반대해오던 일부 한인들은 한국비자를 얻기 위해 그가 설립한 교회에 나가거나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한편 박 씨의 모친은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사여서 그녀가 한국을 방문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년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해온 동포들의 입국이 거부된 사실을 개탄했었다.
사라 박, 당신은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지금이라도 당신의 업적이 재조명 된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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