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플루엔자 A형(H1N1)이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는 인플루엔자 관련 증상의 기록을 의무화하고 있었고 적외선 탐지기로 열이 있는 사람을 조사하였다. 전염성이 강한 이번 바이러스는 사람과 조류 인플루엔자, 그리고 두 가지 돼지 독감 바이러스가 뒤섞인 형태의 신종 바이러스라 한다. 손을 자주 씻고 몸이 피곤치 않게 하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번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각종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계속 저항균과 변종을 만들어왔다. 결핵균도 그 중의 중요한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저항성 결핵이 다시 미국,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부쩍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전 세계에는 20억명의 결핵균 감염환자가 있다. 몇 년 전 결핵이 유난히도 많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오지 마을을 찾아 갔던 일이 생각난다. 이 마을에 결핵이 많은 것을 알고 나는 일을 도와줄 청년과 함께 오렌지카운티 보건소에 가서 결핵균 진단 요령을 다시 복습했다.
그리고 미국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상당량의 결핵약을 구해 오지로 갔다. 짧은 기간이나마 환자들을 진단해 주고 선교사님에게 약을 넘겨주고 현지 보건소와 연결을 시켜 주는 일을 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자원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나는 이번 방한 중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참배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한국의 결핵퇴치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한 가족을 알게 되었다.
양화진은 한강변에 있던 3대 나루터이자 군사기지였다고 한다. 그 언덕에 500여명의 선교사를 포함한 외국인의 무덤이 있다. 그 분들 중에 1933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조선의 폐결핵과 싸울 요양원을 세우고 결핵퇴치 운동을 벌인 분들이 닥터 홀 선교사 가족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닥터 로제타는 몇 년 먼저, 그 남편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은 1891년 한국 땅을 밟았다. 닥터 월리엄 제임스 홀은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청일전쟁으로 잿더미로 변한 평양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자신도 발진디프스로 세상을 떠났다.
임신 중이던 부인 로제타 여사는 슬픔 가운데 아이를 낳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1898년 그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다시 조선으로 건너 왔다. 조선에 오자 얼마 되지 않아 또 사랑하는 딸을 한국의 풍토병으로 잃게 되었다. 딸 에디스를 남편의 묘 옆에 묻으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조선을 위해 일할 결심을 하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셔우드 홀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해주소서”
닥터 로제타 홀은 그 후 68세가 되기까지 우리 민족을 위해 조선 최초의 맹인교육을 시작하고, 현 이대부속병원과 경성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세워 의학 발전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이루었다. 그녀의 아들 닥터 셔우드 홀은 1893년 생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의사수업을 마치고 결핵 전문가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갓 결혼한 부인 의료선교사 메리안 홀을 데리고 다시 조선으로 왔다. 그 부부는 황해도 해주에 1933년 결핵 요양원을 세웠고, 모금의 한 방편으로 ‘크리스마스 실’ 운동을 시작하여 결핵퇴치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닥터 셔우드 홀은 1940년 일제가 간첩 누명을 씌워 강제 추방할 때까지 의료사업을 계속하였다. 닥터 홀의 2대에 걸친 조선 사랑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무지의 고통과 결핵의 어려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
전염병은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닥터 홀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한 질병이 인간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양화진 언덕에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 쪽을 바라보니 가난과 질병의 나루터였을 듯한 곳에 장엄한 고층 빌딩들이 서있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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