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옥 (MoMA근무)
오늘 옛 사진첩이 든 상자를 정돈하다가 내가 국민학교 때 썼던 동요와 시가 나란히 적혀있는 낡은 공책을 발견했다. 어릴적 감성이 담긴 글을 오랜만에 읽어 나가는데 그중 내 추억을 딱 정지시켜 놓은 것이 하나 있었다.
부산으로 피난 가 있던 어느 화창한 날 나는 시장보러 가신다는 큰 엄마를 쪼르르따라 나섰다. 큰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늘 장바구니에 챙겨 넣어 주셨었다. 그날을 조금 달랐다. 맛있는 것을 고르기전, 저쪽 한 모퉁이에서 삐약삐약 하는 소리와 함게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미군 상자, 그 속에 연 노란색 병아리들이 서로 질세라 떠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너무나 귀여워서 난 넋을 읽고 병아리들의 사연을 하나 하나 다 들어주려고 서 있다가 절대로 집에서는 기를 수 없다는 큰엄마를 졸라 그중 제일 자그마한 놈을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 내 작은 손에 안겨온 이 노란 병아리를 난 너무나 사랑했다.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깨끗한 물과 모이를 열심히 챙겨주고 밤에는 조그만 상자에 넣어 내 머리맡에서 잠을 재워 주었다. 통통하고 예쁘게 자라는 것이 너무 신통해서 네 손금을 보자고 성가시게 쫓아 다니기도 했다.아직 노란털이 뽀송히 남어있던 어느 날 아침, 이 병아리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내 병아리는 저를 품어준 엄마닭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싫건 쳐다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당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를 꼭 닮은 새끼들을 푹 감싸 주리라는 꿈을 매일 꾸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억지는 무리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어린 내 마음에도 너무나 불쌍하고 미안해서 며칠을 엉엉 계속해서 울면서 이 병아리를 위해 쓴 시 두 개를 조그만 무덤에 묻힌 조그만 영혼에 바쳤었다. 그 나이에 뭐하러 그렇게 길게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대강 요약해 본다.
“귀여운 병아리 나의 사랑아,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있을 너, 어쩌자고 미련하게 우리 집에 와서는, 하나의 불쌍한 주검이 되었니?<중략> 나는 지금 하염없는 눈물을 쏟는다, 지붕 위의 새소리 네 음성같고 낙엽이 구는 소리 네 걸음 같아서 두 손을 벌리고 허공을 안는다<중략> 나는 너를 끝까지 잊지 못한다”그 옛날 미군상자 속에서 삐약삐약 떠들어댈 때 내 병아리는 이렇게 말했을 거다 “우리 엄마는 어딨어? 왜 내가 이 속에 갇혀있지? 빤히 쳐다보는 너는 누구야? 나를 이곳에서 빼내줘, 얼른. 나도 살아야 될 권리가 있고 꿈도 있어”
나는 바로 그때 내 병아리가 원하는 꿈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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