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열정 여전해
이민106년 하와이 이민사와 함께하는 메리 홍 박할머니(사진)가 지난 20일 100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민 2세로 메리 홍 할머니의 삶은 하와이 소수민족으로서의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 그 자체이다.
1909년 6월20일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홍한식 목사와 정혜자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홍 할머니는 1911년 언더우드 목사의 지시로 하와이로 파견된 선친의 뒤를 이어 1912년 모친과 형제 태희씨와 함께 하와이로 이민왔다.
홍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알려졌는데 학교 수업외에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첫 도착지인 마우이에 선친이 개설한 주일학교는 물론 지역 한인사회 행사, 그리고 황하수씨가 창설한 형제회에 가입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높이며 커뮤니티 봉사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의 홍 할머니는 자신이 가입한 소녀단체 전국대표 자격을 부여받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열린 전국 대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으나 외국인이란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은 적도 있다고 회고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팔라마 복지관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했고 이 당시 이승만 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설립한 한인기독교회에서 아이들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해 왔다고 한다.
1934년 어네스트 박(한국명 관후, 1975년 타계)과 결혼한 할머니는 그러나 슬하에 친 자녀가 없어 어나(Erna, 63), 수잔(60), 마이클(5년전 53세로 타계), 3명의 자녀를 입양했다.
홍 할머니는 현재 장녀인 어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공황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수백여명의 한인동포들을 돕기 위해 아무 대가없이 발 벗고 나섰고 그녀가 단지 사무원으로 남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점을 인식한 복지관에서 장학금을 쾌척해 홍 할머니는 하와이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하와이대학 2학년 재학시에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해 팔라마 복지관측에서는 다시 돌아와 줄 것을 요청해 근무처로 돌아갔다.
1950년대에는 한인 결핵환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주 보건국에서 레아히 병원에서 근무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한인 결핵환자가 크게 늘어난 레아히 병원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던 홍 할머니의 존재는 독보적이었고 동시에 라나킬라 노인센터에서도 도움을 요청해와 자원봉사로 이곳을 자주 찾기도 했다는 것.
월터 맥카렌 종합이민법의 통과로 외국인들의 미국이민이 제한되기 시작한 1952년에는 하와이에서 일련의 한인들과 함께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홍 할머니는 선서식에서 새로이 귀화한 미국시민들을 대표해 당시 리차드 닉슨 부통령에게 화환을 전달할 것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홍 할머니는 지금까지 여러 한인 단체들을 지원해 왔고 특히 한국문화를 보전하고 한인 2세들간의 동지애를 돈독히 하기 위해 설립된 ‘코리안 유니버시티 클럽’의 든든한 후원인으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0세가 된 홍 할머니는 지금도 흐트러짐 없이 정정한 모습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새로이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을 위해 여러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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