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빈 (교도소 심리학자)
국어사전에 보면 사랑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중히 여기어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 이성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 일정한 사물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마음. 동정, 긍휼, 구원,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 박애, 자비”미국의 콰인(W. V. Quine)이라는 철학자는 정의에는 보고적(reportive) 정의와 해명적(explicative)정의와 창약적(stipulative)정의가 있다고 하였다.
보고적 정의는 위의 사전에서와 같이 언어표현의 용도에 대하여 보고와 서술을 하며 그 용어의 동의어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해명적 정의는 보고적 정의를 개량하여 그 해당용어의 뜻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주석과 설명을 다는 정의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학문적 정의는 이 해명적 정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루벤 파인 이라는 미국 심리학자는 그의 ‘인간경험에서의 사랑의 의미’라는 책에서 사랑이라는 말의 뜻은 사랑의 상반개념인 증오심과 대조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인류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에게는 사랑의 사회와 증오의 사회 두 종류가 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인간의 체험과 감정 속에는 사랑과 증오의 요소가 함께 들어있지만 사랑이 사회의 특징은 증오심보다 사랑이 더 우세한 분위기를 이루고, 증오의 사회는 사랑보다 증오심이 더 우세하게 사회의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하였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훌륭한 종교를 가진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사랑의 사회가 아니라 증오의 사회라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를 가진 서양사회도 증오의 사회에 속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일찍이 사랑의 사회로 시작한 기독교는 4세기에 로마제국과 합세하면서 살인과 파괴와 그밖의 증오의 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합법화하는데 이바지하였다고 역사기록은 말하고 있다. 종교를 일종의 국교로 삼는 나라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나라를 악의 나라라고 불러 그러한 나라에 대한 증오심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랑과 증오심을 인간심리의 기본 원동력이라고 간주한다. 사랑은 흔히 삶의 의욕 또는 리비도라는 말로 표현되고 증오심은 죽음에의 충동 혹은 그림자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삶에의 지향이요 증오심은 죽음에의 지향임을 이 표현들은 나타내고 있다. 증오의 사회 속에서는 정신병이 증가하는 현상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정신병의 큰 특징 하나는 사는 것이 도대체 즐겁지 않은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증세는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에서는 사랑은 신에게서 온다 하고 증오심은 인간 속에 도사린 죄라고 말한다. 사랑의 결과는 생명이요 증오심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랑이 흘러나와야 할 기독교회에서 증오심이 흘러나온다면 사람들의 빈축을 안 살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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