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타계한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는 잭슨 폴락과 윌렘 드 쿠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미술계에 도전장을 내고, 60년대를 대표하는 팝 아트나 플럭서스 운동의 포문을 열어준 예술가이다.
그는 흔히 네오 다다(Neo-Dada) 예술가로 일컬어지는데, 변기를 가져다 ‘샘’이라고 이름을 붙여 마르셀 뒤샹이 소개한 오브제라던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장르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대표작 ‘침대(Bed, 1955)’는 캔버스 대신 그가 직접 사용하던 이불과 배게위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추상 표현주의 스타일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라우션버그는 일상 사물들을 조합하고 표현적인 붓질을 더한 그의 작품들을 컴바인(Combines)이라 불렀다. 신문이나 동물 박제와 같은 대중문화 혹은 키치라고 불릴 법한 재료들을 작품으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예술을 위한 예술도 아닌 다다운동의 예술에 반대하는 예술도 아닌 예술과 인생을 강조한다. 패러디와 패스티쉬는 그의 중요한 예술적 전략 중 하나인데, 뒤샹이 모나리자 그림 엽서위에 수염을 그려넣은 것 처럼, 라우션버그도 유명 예술 작품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사용하고,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강렬한 붓질과 같은 스타일도 모방한다. 유명 작품이나 스타일을 흉내내거나 차용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는 바로 그 유명작품과 스타일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라우션버그는 초기 회화작품에서 구겨진 신문지 위에 검정색으로 화폭을 가득 채운 단색화 연작을 내놓았는데, 물감 밑에 구겨진 신문지로 인해 화폭은 독특한 질감을 띄게 되었다. 이는 그가 추상표현주의 형식의 회화들이 물감만을 가지고 보여주었던 시각적 효과를 구겨진 신문지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도 표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추상표현주의가 표방하는 예술적 형식이 절대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962년부터 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는데, 이는 팝 아트 예술가인 앤디 워홀이 즐겨 썼던 기법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수백장, 수천장 복제해 낼 수 있는 판화기법이다. 사진이나 인쇄기법에 대한 라우션버그의 관심은 회화나 조각으로 대표되는 예술의 장르 파괴를 도모하고, 원본에 대한 주장을 철회함으로써 예술 작품으로부터 신빙성(authenticity)을 박탈한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이나 케네디 대통령의 이미지들을 만나게 되면서 예술은 대중에게 더 친숙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듯 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예술과 인생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대중 문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대중 문화의 전폭적 수용으로 비춰졌고, 60년대 많은 예술가들의 정치적, 사회적 침묵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본 글은 알재단에서 매주 화요일 진행되고 있는 미술사 강의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며,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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