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교기관 탐방
▶ 뉴욕정원교회 고려교회(UMC·미국연합감리회 소속)
■교회연혁
미국연합감리회(UMC)에 소속된 고려교회(Metropolitan-Koryo United Methodist Church·담임 한영숙목사)는 1982년 8월15일 200 Claremont Ave. #3 NY, NY 10027에 소재한 한영숙전도사 자택에서 5명이 모여 예배를 갖고 교회 이름을 고려교회로 결정했다.
8월22일 201 West 13가(7th 애비뉴) NY, NY 10011에 위치한 Metropolitan-Duane U.M.C.건물에서 일요일(주일) 오후 2시에 내외 빈 17명이 참석해 첫 예배를 가졌으며 12월5일 창립예배를 가졌다.
1991년 11월10일 예배 처소를 150 East 62가 Lexington U.M.C.로 이전하여 첫 번 예배를 가졌다. 1997년 1월12일 미주한인장로회 뉴욕노회에서 안수 받은 김종환목사를 본 교회 협동목사로 받기로 목회협조의원회에서 결의하고 1월19일 정기총회에서 인준했다. 6월15일 바울세계선교회를 조직하고 그 책임자로 김종환목사로 하며 교회지 대신에 ‘신앙과 교회’지를 발행하도록 임원회에서 결정했다. 11월10일 ‘신앙과 교회’ 창간호를 발행했다.
2002년 12월8일 교회 창립 20주년 기념예배 및 권사 취임식을 가졌다. 12월8일 이민신학총서 제1권으로 한영숙목사 저 ‘성탄절 이야기’를 발행했다. 2004년 3월1일 성경통신학교를 개강했다. 2005년 12월2일 탈북자 초청 간증집회를 열었다. 2007년 9월16일 중고등부 교회학교를 시작했다.
■고려 교회란 이름은
한영숙목사는 “언젠가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될 것이다. 통일국가의 이름을 따서 고려라 지은 것이다. 신라는 삼국시대에 쓰던 이름이고 조선이란 이름은 북한이 쓰고 있기 때문에 통일국가였던 고려란 이름을 따서 고려 교회라 지었다”고 설명한다.
■성전을 물려받음
고려 교회(212-932-7746)는 1991년부터 공동으로 사용해 오던 랙싱톤의 성전을 물려받게 됐다.
이에 한영숙목사는 “나는 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건물이 없는 교회를 세워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없어질 수도 있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애쓰는 나를 사람들은 무시했고, 내 스스로가 보기에도 second class citizen 같은 목회자로 사는 내 모습이 우습게 여겨질 때가 많았다. 여성 목회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데 그에 더하여 건물조차 없는 교회를 담임한 목사여서 더욱 초라하게 보였던 것”이라며 “그러나 교회 건물을 해결한 것이 내 목회의 업적이라는 말은 나에게 생소했고 이 말이 나로 하여금 목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
한영숙 목사는 “나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목회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는 교회를,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교회를 향한 내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괴롭고 힘들 때는 도망가고 싶어 했고, 왜 나를 목사로 살게 하셨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 이 길을 계속 갈 수 없다고 울부짖은 적도 많았다”며 “아가페의 사랑인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를 위해서 나의 생명을 바쳐 존재하려 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목회관을 말한다.
■부활절 공개성서강좌
고려 교회는 1983년부터 2007년까지 매 년 부활절 공개 성서강좌를 실시했다. 주제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1회), ‘복음서가 전하는 부활사건’(제4회), ‘십자가의 의미’(제10회), ‘기독교 창조론은 무엇을 말하는가’(제15회), ‘요한복음서 부활사화의 특수성’(제19회),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제24회) 등이다.
■한영숙 목사는
4대째 기독교집안에서 6남매의 맞이로 태어난 한영숙<사진>목사는 아버지가 33세에 장로가 되어 30년 동안 대한예수교장로회 경서노회의 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노회장도 역임한 한재덕 장로(금년 작고·6.25참전 국가유공자로 현충사 국립묘지에 안장됨)이다. 한 장로는 49년 동안 고아들을 돌본 상주보육원 설립자이기도 하다.
한영숙 목사는 1978년 어느 봄 날 “내가 왜 죄인인지를 깨달았고,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으며, 그 십자가로 내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을 얻고 그 때 나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및 대학원을 나온 한 목사는 이화여대에서 강사를 역임했다. 1979년 8월 30일 도미했고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학위를 받았다.
목사안수는 1983년(Decon)과 1985년(Elder) 미연합감리회 뉴욕연회에서 받았다.
가족으로는 남편 김종환목사와 미군장교인 아들 원기가 있다.
교회주소: 150 E. 62 St.,(Lex. Ave.-3rd Ave.) NY, NY 10065.
www.koreaumc.org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