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스미소니언 박물관 구전 CD제작 작업참여
한국의 한 FM 방송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짧은 프로그램을 장기간 지속한 적이 있다. 이름없는 촌부나 아낙들이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 혹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맵고 짠 가사일을 하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들을 버스안에서 혹은 가정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은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소라 박사는 제목도 없고 악보도 없는 무명씨들의 노래가 방송에 소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의 소리들을 찾고 보존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40여편의 책과 90여편의 논문들을 통해 25년 이상 한국의 소리를 연구해 온 후, 이제는 정년퇴직을 한 나이에 ‘아메리칸 인디언의 구전’이라는 더욱 글로벌한 연구 과제를 위해 부지런히 미국땅을 돌아다니고 있다.
9월 5일과 6일 열렸던 이로퀴오스(Iroquios) 인디언 페스티벌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이 박사는 “ 지리적으로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입으로만 전해지는 형식과 삶의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서 등 여러가지면에서 미 원주민들의 구전 가요와 한국의 구전 가요, 그리고 세계 곳곳의 구전 가요들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인디언들의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65세에 만난 소울메이트와 함께” 그랜드 캐년을 부지런히 오가며 여전히 후대에 소리를 전하고 있는 전승자들을 찾아다녔다.
이소라 박사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전형적인 수재가 갑자기 음대 작곡과로 전공을 옮기더니 국악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성균관대 철학과에서 박사 공부를 했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연구에만 매달려 온 그는 젊은 시절부터 관습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녔던 셈이다.그가 노동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3년부터 문화재청 전문 위원으로 근무하던 때부터다. 보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요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다가 “객관적인 가치를 증명 할 순 없지
만 문화재 못지않게 소중하고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온 소리”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알게 됐다. 더 중요하게는 이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없어질 수 있는 처지라는 사실이었다. 전문성도 예술성도 없는 민요일뿐 이라고 폄하하는 엘리트들도 있을 지 모르지만 이들 노래의 역사는 결국 민중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후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 프로에 계속 출연 요청을 받는 등 독보적인 농요 전문가가 된 이 박사는 소리의 전승자들을 찾아다니며 녹음을 하고 이들을 악보에 담는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다. ‘송포 호미 걸이 논맴 소리’, ‘논김 방아타령’, ‘쌍가래질소리’, ‘회방아소리’ 등은 그가 녹음한 ‘한국의 농요’집 5개중 극히 일부분이다. 10월 중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준비하고 있는 구전 CD 제작 작업에 참여할 예정인 이 박사는 퇴직 후 더욱 왕성한 열정으로 연구와 로맨스에 매진하고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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