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영 (전 언론인)
지난 6.25 전쟁시기 한국에서 국군이 죄없는 비무장 민간인을 무더기로 학살한 끔찍한 현장이 또 불거져나와 분단이 초래한 민족수난의 비극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9월4일 “시간에 쫓기는 어두운 과거사 발굴”이란 제목아래 전남함평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관련사진과 함께 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금껏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가 밝혀낸 민간인 학살사건중 생존자가 남아있어서 자신이 겪은 그때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어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신문은 서울에서 175마일 남쪽 광암리(함평군 해보면)의 한 언덕 숲속에서 벌어진 비극의 현장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날 현재 드러난 유골은 108구였다. 이날의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두 사람의 생존자중 한 사람인 문만섭씨(76세)는 악몽의 그날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6.25 발발 이듬해인 1951년 2월20일 마을을 한동안 점령했던 빨치산 게릴라들이 철수하고 국군이 들어왔다. 그들은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 모이도록 하고 언덕에 길게 파놓았던 구덩
이에 쳐넣었다. 이들중 4분의 1가량은 노인, 여자, 어린이들이었고 그 중에는 한가족들도 있었다. 노인, 여성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더러는 눈물로 애원하기도 했다. 군인들은 빨치산에 우호적이었고 그들을 도왔으니 같은 빨갱이라고 했다. 3차례의 일제사격이 머리위로 퍼부어졌다. 골이 터지고 피가 튀고 비명과 아우성, 생지옥이 벌어졌다. 맨 아래 엎드린 문씨는 시체더미에 깔려 총탄이 비켜갔다. 피바다 속에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사흘 뒤 어둠 속에서 나와 보니 군인들은 철수하고 마을은 조용했다. 또 한 사람의 생존자와 함께 문씨는 오늘까지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그 날 학살부대의 전투일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적사살 1005명, 아군 피해 3명...” 그러나 생존자들은 주장한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가 비무장 민간인들이었다고. 문씨가 증언했던 대로 땅속에서 파낸 유골들은 손이 뒤로 묶여져 있었고 한 어린이의 해골은 손에 구슬을 꼭 쥐고 있었다. 5.16이후 수십년 동안의 반공정권아래 민간인 학살에 관해 거론하는 것조차 엄중하게 금지되었고 어쩌다 일부 유족들이 가족의 시체를 몰래 파내 장사지냈다가 적발되면 반역죄로 엄벌되었다. 1990년대 노근리 사건이 밝혀지고 펜타곤이 민간인 살해의 과오를 인정한 다음 군경에 의한 양민학살사건들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졌다. 2005년 노무현 민주정부에서 미군과 국군, 경찰 그리고 공산군에 대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창설되었는데 보복이 아니라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혀내 똑바로 인식하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한시적으로 조직된 것이다.
과거사위에 지금껏 접수된 희생자 유족들의 주장이 1,222건, 그 동안 찾아낸 집단학살장소가 168곳, 이중 50건 이상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내년 4월 위원회 수명이 법적으로 끝나는 날까지 미결로 남아있는 13건의 발굴사업도 예산부족과 이명박 정부의 적대적 비협조로 성사될지 불투명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픈 역사를 후대들에게 교훈하며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되풀이하여 상기시킨다. 감추고 숨긴다고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측 가슴에 대를 이어 원한의 앙금이 되어 항시적 불화와 갈등을 길러내는 비옥한 토양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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