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은 누 ˚ 구˚ 세 ˚ 요?
바이올렛 한
어느 후배와의 대화중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약 대학의 전공을 다른 걸로 택했더라면 이보다 더 좋았을거야.”
학연의 손님이니 자연히 옛 학창시절의 추억담이 많이 나온다.
후배가 되물었다. “지금 이 모양이 아니면 무슨 모양을 바랬는데요?”
난 볼멘 소리로 말했다. “내 전공은 내 선택이 아니고 담임의 선택이었어. 내가 좋아하던 전공을 했으면 지금쯤 뭐가 되도 됐을텐데…”
“어 어…. 그 만약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걸요.”
영악한 후배로부터 한수 배운다.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되는것이 아니란 걸 모르는 바도 아닌데. 난 왜 이리 어리석을까.
나의 선택이란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주체성 없는 시간에 내맡긴 무위 자체였다.
그것이 후회된다.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내가 굳이 경쟁이 약했던 ⊙⊙학을 전공으로 택한 건 그곳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자리가 없어서 결국 일반 직장에 들어갔고 그래도 꿈을 버릴 수 없어 유학을 다녀왔고 그럼에도 지금 대학 교수가 아닌 엉뚱한 길을 가고 있어요.”
원하는대로 되지 못했지만 이 친구는 자신의 의지대로 최선을 다 했다. 교수가 되지 못한 이 친구가 귀국하면서 책을 한권 주고 갔다.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별나게도 책의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후회하게 되어있다. 후회함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저 사람 누구지요?” “저 사람 ⊙⊙그룹 CEO 입니다.”
저자가 말한다. 이런 지위로 정체성을 말할 땐 참담하다. 그 지위는 언젠가 사라 질것이고 그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현인들과 철인들이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가. 토마스 머튼이란 신학자가 세상의 가장 참된 기쁨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 이 힘든 질문에 위 책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내 정체성은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좋아할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들판의 들 꽃과 산속의 솔바람 소리밖에. 그리곤 가끔 <별은 빛나건만>을 듣을 때 울고 싶은 감동이외엔. 위 책은 막장에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으나, 현대 정보 사회에서는 나는 놈 위에 재미있는 놈이 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댁은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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