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수필가)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H 신문에 실린 K 시인의 글을 봤느냐?’는 것이었다. “언뜻 봤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되물었더니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신문을 다시 꺼내어 읽어 보았다.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문학 교실에 나오던 한 여자 분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명문 여자대학 출신이라고 행세를 해서, 학벌을 빼고 등단을 시켜주었다는 것이었고 ‘세상의 멍석은 넓은데 왜 허위로 위장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적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언어가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드라마를 보면 연인사이에 거짓말을 했다는 것으로 결별을 선언하고, 부부간에 이혼을 불사하는 경우를 보았다. 영국에서는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남자는 하루 여섯 번. 여자는 세 번씩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두해 전인 것 같다. 한국교수 신문에 “닷새간 교수 신문의 필진,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교수 3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 (43%)가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고 밝혔다. 자기기인은 주자(朱子·1130~1200)의 어록을 집대성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등장하는데 ‘자신을 속이지 말라(무자기·毋自欺)’는 대학(大學)
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남을 속이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인데,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 심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자존심이 상하고 굴욕이나 창피한 모습이 싫어서. 진실을 말해서 손해 볼 필요 없다는 약삭빠른 계산으로. 다른 이들을 가볍게 보는 오만이 허세를 부리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물론 남을 배려해서 나오는 하얀 거짓말도 있겠으나 그것도 여러 번 하면 거짓말쟁이 대열에 오르게 되겠다.
오래전, H일보 신춘문예에 ‘학벌시비’란 제목의 글을 써서 당선되었던 나는 미천한 내 약력을 솔직하게 적고서 후회한 적이 있다.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내 이름 뒤에 여인(?)이란 말을 써놓아 멸시를 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K 시인의 글속에는 ‘그 뒤로 학벌 문제가 부끄러웠던지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 자격지심이 나에게는 미국 대학 졸업장을 받게 했던 덕이 되긴 했다. 그 때 거짓 학력을 기재했다면 아마도 나는 내내 전전긍긍하며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당당함이 빠져 버린 거짓말 뒤에는 항상 불쌍하고, 초라한 내가 서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을 거짓말로 속이지 않을때 인간의 가치는 드러나는 것이라 믿는다.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면 다 부질없는 욕망의 자화상이 몇 개,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가진 자들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공평하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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