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친 감자 지진 ‘로슬리’맛 인상적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유르건의 환갑잔치 초청받아
미국과 달리 부부를 따로 떨어뜨려 좌석 배치
유르건의 회갑 잔치가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다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그라즈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지요. 유르건이 가서 사냥을 즐기는 곳(hunting lodge)이라는 군요. 저는 제네바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고 미리 가 있던 남편이 마중을 나오기로 하였습니다. 잉그리드는 아메리칸 엑스프레스의 여행 전문 가이드로 항상 대 부대를 몰고 다니는 일을 하였으니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 하리라 생각 했습니다. 결단력이 있고 일을 능률적으로 척척 해
내는 것을 제가 너무나 부러워하지요.
자기네 독일 말을 빼고도 영어, 프랑스어, 이태리어를 모두 본토배기들처럼 한다니까요. 재주 있는 사람이 참 많기도 하네요!제가 그라즈에 도착 하는 시간은 밤 9시 반 경이라, 츄리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3시간 기다려야 했습니다. 40분 정도만 기다리면 떠나는 비행기로 갈아타려 했더니 인터넷을 통해 싸게 산 표라 바꿀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싼게 비지떡! 이왕 기다려야 하니 그 동안 저녁이나 잘 먹자고 생각 했지요. 여러 상점도 구경하고, 서두르느라 준비 못한 스타킹, 여행용 치솔, 손에 바르는 크림등도 사고 음식을 파는 곳을 모두 돌아보았지요. 별 볼일이 없는 집들뿐이라 망설이다가 안내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물어 보았더니 위층에 한번 가보라고 제시 하였습니다. 스위스 음식을 파는 곳이라 하여 메뉴를 보니 먹을 만한 것이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옆 사람을 보니 닭고기 같은데 그 옆에는 채친 감자 지진 것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지 메뉴를 볼 것도 없이 웨이터에게 같은 것을 주문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로슬리 (roestli)라는 이 감자 지진 것이 참 맛이 있기 때문에 이때 먹어 보지 않으면 언제 먹어 보겠어요? 사실 집에서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것 인데 감자 가는 것이 귀찮아서 인지 잘 하게 되지를 않는군요. 그러고 보면 저는 항상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할 수 있는 것만 찾는 셈이네요. 아니면 간단하게 게을러서 그렇다고 할까요?저녁을 먹고 뉴스위크를 뒤적이다 보니 세시간이 후딱 가 버렸습니다. 그라즈에서는 남편이 빌
린 차를 갖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한 번도 안 와본 곳이라 사흘동안 지낼 곳에 대한 관심이 솟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시간이나 걸리는 그라즈 보다 살쯔부르그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곳은 경치가 좋고 아주 평화로운 지역 이었습니다. 호수와 겹겹이 쌓인 산의 경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호텔의 창 밖을 내다보니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멀리는 골프장이 보였습니다.“에비앙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런데도 살만한데”. 그건 제가 한 말이었습니다. 밀슈테트(Millstatt) 골프 클럽에서 호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호수는 거의 짖은 청색으로 거울 같이 잔잔하였고 멀고 가까운 곳에 따라 농도가 다른 푸른 산의 경치가 정말 그림엽서에 담을 만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있을 골프 대회 때에 너무 피곤하지 않기
위하여 9홀만 치기로 하였습니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가 굴곡이 많아 전기 카트를 타라고 추천한 유르건의 말을 따른 것이 다행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우리처럼 미리 온 사람들 25명 정도가 함께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샐러드, 훈제된 고기, 스프를 포함한 뷔페로 시작 하였는데 저는 날씨가 좀 선선하였기 때문에 우선 스프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말간 콘소메 (Consomme 소고기 양지머리로 국물 맛을 낸 말간 스프)에 밀전병을 채 쳐서 넣은 스프가 눈에 뜨였습니다. 다른 데서 못 본 것이라 그것을 들고 자리에 앉
았지요. 간이 꼭 맞은 국물이 너무나 맛이 있었습니다. 채쳐 넣은 말 전병이 아주 부드러운 것을 보니 달걀을 넣고 만든 것 같았습니다. 씹을 것도 없이 훌훌 마시다 시피 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메인 코스로 구운 돼지고기에 사워크라우트와 크노들이라는 빵을 다져 양념하여 찐것을 서브 하였습니다. 사워크라우트는 양배추로 시큼하게 만든 것인데 회색 빛이 나는 것이 모양으로 입맛을 돗구기에는 가망이 전혀 없는 음식. 하지만 잘 만들면 그것도 꽤 맛이 있는 음식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그 근처에서 산다는 바론 (귀족의 직위)과 바로네스 (바론의 처를 일컷는 말)와 대화가 이어져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그 바로네스는 이태리 여자인데 키가 자그마하고 귀엽게 생긴 여자 였습니다. 이태리와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가까운 나라인데도 문화, 생활 풍습이 달라 좀 힘든 점이 있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니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얼마나 클지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우리가 묵는 그 호텔에서 별로 멀지 않은 데에 있는 진짜 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론 페레라 아른스타인은 키도 크고 잘 생긴 남자 였는데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에 피부가 어찌나 희고 고운지 (남자인데도) 보기에도 벌써 귀공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곳 특유의 복장인 목 부분에 붉으스름한 색이 도는 세무가 붙은 녹색 재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히려 이태리 사람처럼 얘기를 잘하여 우리는 넷이 붙어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생일 파티에 모인 사람은 40명 정도. 오붓한 숫자이지요. 테라스에서 칵테일을 서브 하였습니다. 그렇게 술 한잔 들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들 많은지. 적당한 때에 자리를 비켜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서양의 예의입니다.
그가 집안이 좋은 사람이라 온 손님들 중에도 꽤 여러 사람이 그럴듯해 보였고 가문의 문패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도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는 아주 평범한 집안) 물려받은 그 반지를 항상 끼고 다니거든요. 우리 딸은 미국서 자란 아이라 오히려 그런 반지 끼는 것을 쑥스러워 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만날 때는 그게 중요 할 수도 있는데! 좀 더 철이 들면 달라지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좀더 정식 생일 파티라서 좌석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부부를 같이 앉히는데 독일에서는 보통 부부를 따로 떨어져 앉도록 좌석을 모두 지정해 줍니다. 부부는 항상 보는
사람이니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라 구요.저의 왼편에는 어느 독일 대학병원 뼈 전문 외과 과장, 오른 쪽은 유명한 호텔의 지배인, 그리고 앞에는 자연 환경 전문 변호사와 몽실몽실 하게 생긴 오스트리아 여자가 앉았습니다. 유르
건은 집안도 좋고 대대로 물려받은 사업으로 돈도 많은 사람이라 온 손님들도 그럴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앉아 있는 대로 음식을 서브해 주었습니다. 소량의 빠테 (다진 고기로 만든 적은 미트로프 비슷)에 약간의 샐러드가 곁들여 나왔습니다. 호텔 소개 책자에 쓰인 대로 이 집은 음식으로 꽤 유명한 곳인 것 같았습니다. 메인 코스로는 송아지 고기였습니다. 겉이 먹음직스럽게 노릇노릇 하게 지진 것에 다가 맛이 짙은 모렐 (벌집 같이 생긴 버섯) 쏘스와 푹 익힌 흰 아스파라가스가 곁들어져서 나왔습니다. 왼쪽의 의사는 처음에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간단하게 답만해서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야 이거 지루한 저녁이 되는 거 아닐까?. 키가 무척이나 작은 앞자리의 변호사는 어찌나 챠밍한지 나중에는 그의 키 작은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옆자리의 사람을 완전히 따돌리면 너무 실례가 될 것이라 조금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 파티에 온 사람들은 가만히 보니 모두 어찌나 예의가 바른지 자기 주변에 앉은 여자들에게 한번씩 춤을 청해 주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하여튼 신체가 튼튼하다고 생각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우리 보다 축적된 에너지가 훨씬 많은 것 같이 보입니다. 목청 높혀 밤새 얘기 하고 정신 나간 사람들 처럼 춤을 추다니! 사람 살려!
거의 자정이 되어서는 굴라쉬스프 (Goulash soup 파프리카 라는 붉은 양념을 많이 넣고 만든 소고기 스프)를 서브 하였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에서는 큰 파티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약간 출출해 지려는 참이라 모두들 반갑게 받았습니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모두 예의가 무척 바르다. 따돌리는 사람이 없게 옆사람과 신경을 써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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