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와 취재를 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지난 9일 연극과 방송 극작가인 수잔 김(Susan Kim)씨를 만나기 전에는 평소보다 많이 긴장이 됐다. 김씨가 연극 ‘조이 럭 클럽’을 포함해 에미상을 5차례나 수상한 저명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영어로만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영어 인터뷰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나눠야 할 대화의 주제가 ‘여성의 멘스’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김씨는 최근 멘스(월경)에 관한 흥미 있는 문화 연구서 ‘플로우(Flow: The Cultural Story of Mensturation)로 미 출판계에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 여성과 단 둘이서 멘스와 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해야 할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 바로 그 점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며 이 책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즉, 왜 멘스는 공적으로, 떳떳하게 이야기 할 주제가 될 수 없는가? 지금도 35억의 여성이 일생의 거의 40년을 매일 한 번씩 겪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을 생리현상이 왜 여전히 가장 큰 금기(biggist taboo)로 남아있는가 하는 거죠. 편집장과 소호의 커피샵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데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 적이 있어요. 인터뷰에 나오기 여동생이 “리포터가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더군요(웃음). 바로 그런 것이죠.
* 여전히 금기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요?
- 종교적인 이유가 가장 큽니다. 성서에도 멘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실려있쟎아요. 하지만 ‘피’라는 것, 특히 여성의 피는 뭔가 불길하고, 더럽고, 성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은 기독교 문화권만이 아닌 모든 지역의 고대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있었습니다. 불과 최근까지도 일부 와인 양조장은 생리중인 여성이 들어오면 와인 맛이 변하기 때문에 절대 출입을 금한 곳도 있다고
해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더럽고 불길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요. 그래서 남성들도 공개적으로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죠.
* 그럼 드러내놓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될까요?
- 여전히 남아있는 잘못된 멘스에 관한 미신이 사라질 겁니다. 숨겨야 할 것, 부끄러운 것이란는 인식이 바뀔 때 여성과 남성 모두 가장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겠죠. 역설적이게도 여성은 가장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영화 ‘캐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전혀 몰랐던 소녀와 생리를 더럽게 여긴 광신도 엄마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정말
공포스럽게 묘사하고 있지요.
* 여성의 몸은 결코 사적인 영역이 아니고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말한 학자도 있는데요, 이 책은 큰 틀에서 정치적인 성향의 책입니까?
-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쓴 정치적인 성향의 책이냐고 묻는다면 아닙니다. ‘교육적인 목적의 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특히 10대 소녀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기대합니다. 앞서 영화 캐리의 예를 들었지만, 10대들에게 자신의 일생 중 반 이상을 겪어야 할 현상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할 테니까요.
* 한 평론가가 이 책을 ‘획기적이다(Breakthrough)’라고 평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획기적이라는 것이죠? 멘스에 관한 책은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는데요.
- 멘스를 주제로 한 책이 많다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의학이나 생물학 등 순수한 학술용 서적일 겁니다. 아니면 수많은 섹스 관련 서적 중 멘스가 조금씩 언급된 것을 그렇게 느낄 수 있죠. 문화적인 맥락으로 멘스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요? 이렇게 종교적, 문화적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주제도 많지 않을 텐데 일반 교양서적이 별로 없어요.
* 얼마 전 경기 도중 심판에게 폭언을 한 세레나 윌리엄스의 예를 들며 ‘여성의 분노는 멘스와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글을 쓰셨죠?
- 세레나 윌리엄스가 생리대 모델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웃음) 일종의 메타포죠. 남성들 누구나 직장에서 “오늘 저 여자 왜 저렇게 예민해? 그날인가”라고 수근거려 본 적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그날’이 되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내곤 합니다. 하지만 제 글의 진짜 의도는 멘스를 병으로 규정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겁니다. 한때 정신
학계에서 PMS(Premenstural syndrom)라는 말이 유행했죠. 멘스로 인한 히스테리가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건데... 남자도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플때는 짜증내쟎아요. 그게 정신병입니까?
* 어린 시절 유명 탤런트가 나왔던 생리대 TV 광고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여자는 마법에 걸린다’라는 광고도 대 히트를 했구요. 미국은 오히려 생리대 광고 등에 더 엄격한 것 같습니다
- 맞아요. 미국이 개방적인 것 같은데 오히려 동양보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부분도 많습니다. 제가 여대(웰슬리)에 입학했던 18살이 돼서야 친구들과 그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론을 처음 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쉬쉬하는 분위기죠. 한국에서는 훨씬 자연스럽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이다. 이화여대가 위치한 신촌에서 올해로 벌써 7회째 월경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 작가의 첫 번째 논픽션입니다. 언제부터 준비하셨죠?
- 3년 전 제 책을 출판했던 편집장이 제의를 했습니다. 공동저자이며 그래픽 디자이너인 엘리사 스타인과 함께 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들 생각이 없냐구요. 그 흥미로운 주제가 멘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저했습니다. 부모님한테 말했더니 특히 어머님이 아주 뜨악해하더군요.(웃음) 자료조사가 아주 많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보람있는 작업이었어요
수잔 김은 TV 다큐멘터리와 어린이 프로그램 작가로 ‘작가연맹’상을 수상했으며 에미 탄의 소설을 연극화한 ‘조이 럭 클럽’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역시 작가인 남자친구 로렌스 클래반과 함께 ‘Circle of Spies’ 와 ‘Fielding Course’ 두 권의 그래픽 소설을 완성하고 곧발표할 예정이다. ‘플로우’는 현재 주요 반스 앤 노블 매장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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