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자(의사)
지난 1월 14일, 아이티 섬에 파견된 의학 CNN 전문기자인 닥터 굽타(Dr Sanjay Gupta)가 아비규환의 거리를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생중계 되었다. 그는 생후 15일이 된 여자아기의 목숨을 건지려고 어깨에 왕진가방을 둘러메고 뛰어가고 있었다. 그는 참사현장에 도착한 후 곧 임시변통으로 두꺼운 나무판자에 머리를 다친 아기를 눕히고 검진을 했다. 그는 검진이 끝나자 뇌 손상이 없는 것 같다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는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아기를 안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아기의 찢어진 머리의 상처부위를 하얀 붕대로 감았다. 몇 분 동안 아기를 치료하는 장면이 진행된 TV 장면은 인간애의 극치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가슴을 적시었다.
닥터 굽타는 40세의 인도 계 신경외과 의사로 타임 지에 의학계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CNN의 의학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최전선을 누비며 뇌 손상을 입은 참전군인들을 치료했다.나는 몇 년 전 아이티와는 같은 땅이었으나 스페인과 프랑스가 분할하여 통치하게 되어 갈라놓
은 도미니카 섬에 들린 적이 있다. 어느 한 도시의 광장에 세워져 있는 동상 앞에서 나의 발길은 얼어붙듯이 멈추어 버렸다. 울퉁불퉁한 구릿빛 근육의 흑인 노예가 발목에 차고 있던 쇠고랑을 한 손에 불끈 움켜쥐고 높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동상이다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난 기쁨을 부르짖고 있는 모습은 온몸을 떨리게 한다.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이 살갗을 태우는 사탕수수밭의 대농장에서 서구 유럽인 노예주의의 가혹한 채찍질로 노동착취를 강요당했다.
피눈물을 흘렸던 흑인 노예들이 얼마나 목마르게 갈구했던 자유인가? 아이티 섬은 열대 원시림이 우거진 보석 같은 섬이었으나 1492년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디면서 라틴아메리카 흑인 식민지 정복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1804년, 아이티인들은 낫, 괭이 등의 농기구의 무장으로 싸워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중남미에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된 흑인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놀랍게도 겨우 200년 전의 근대사다.그러나 식민지에서 벗어난 그들은 열강들이 움직이는 국제질서의 수레바퀴에 다시 치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인들은 지진이 아이티 섬을 강타하기 이전에도 심심치 않게 TV화면으로 아이티 난민들이 캐리비안 해를 표류하는 난민(Haiti Boat People)들을 바라보
게 된다.
플로리다 해안에서 그들이 가진 것은 몸에 걸친 단 한 벌의 옷뿐, 맨발로 다이빙을 하듯이 바닷속으로 풍덩 풍덩 수직선으로 몸을 던진다. 목숨을 담보로 알몸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우리 이민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금 아이티 공항은 국제사회가 앞다투어 구호품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로 포화상태다. 그러나 참사 난민들에게 당장의 긴급 구호의 손길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뼈아픈 노예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존의 삶을 공유하는 의식이 더욱 필요하다.
지금 아이티 섬은 시체들이 무더기로 묻히는 집단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땅이다. 역사는 파괴와 재건이라는 쇠고리로 연결되면서 역동관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역사는 어제라는 껍질을 벗으며 다시 태어난다. 에메랄드 쪽빛의 아름다운 바다에 떠있는 아이티 섬이 보석 같은 환상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강진으로 부모를 잃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 아기는 누구의 손에서 키워 질것인가? 이 아기가 자라는 동안 진흙덩어리를 먹고 사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의 땅, 아이티 섬에서 살아남은 아기는 아이티 섬의 미래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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