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창간41주년 특별기획
▶ 골프 치며 친해진 디터 알고보니 행켈 회사 회장
골프 때문에 만나 친하게 된 독일 사람이 있습니다. 디터는 헹켈(Henkel Group)이라는 회사의 회장을 지냈고 전 독일 화학협회의 회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대 기업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헹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부엌에서 쓰는 칼 만드는 회사인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런 상표가 있거든요. 저와 가장 관련이 있는 물건이니 그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디터의 헹켈은 그 헹켈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헹켈은 화학 약품 회사로 세탁비누, 여러 가지 세척 약품, 샴푸 뿐만 아니라 붙이는 테이프 까지 포함한 수많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 하는 회사라고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쓰는 세척제, 샴푸도 맨 그 회사 것이었습니다.
물론 친해진 것은 크리스티네가 아주 다정다감하여 정이 가게 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워 것입니다. 누구나 호감을 갖는 여자이지요. 크리스티네를 보면 ‘어쩌면 저 나이에 저렇게 순진 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 됩니다. 그 여자는 제가 요리를 쉽게 한다고 (지금은 아닌데) 부러워 하였습니다.
“이런 것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얘기를 합니다.“그 힘든 의학 공부를 했는데 무슨...” “제 몸 고장나면 그거나 고쳐 주세요. 요리는 제가
해 드릴테니” 라고 제가 말하지요. 친분이 생기면서 그의 사업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재력있는 회사의 회장 이었다는 말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 했습니다. 서로 잘 통하면 친구가 되는 것이지 사람의 직위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요. 골프를 치면서 때로 공을 숲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빈틈을 보이기도 하고 너무나 허식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말이 반 은퇴한 사람이지 독일 굴지의 기업에서 그의 조언을 기다리는 청탁이 많아 동분서주 참석하는 회의도 많았습니다. 유럽의 여러 재무장관들과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일국의 수상과도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정계와 사업계를 움직이는 굵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슨 아이디어가 있거나 자기 회사에 관계되는 일이 있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벌써 전화로 지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다르구나. 무슨 생각이 있으면 그것을 씹고 또 씹느라 (황소 같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저를 보게 되더라구요. 그 바쁜 일정에 노는 것도 이만저만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에너지가 굉장하다고 생각 했는데 그는 그것을 뺨칠 정도였습니다. 오페라 구경을 함께 가던 날. 그 날 벌써 스키를 탔다고 하여 놀랬습니다.“하루 종일 스키 타고 이렇게 저녁에 오페라 구경갈 에너지가 있으셔요?” “오후에 잠깐 눈을 붙였다” 고 장난 하다 들킨 아이처럼 웃어 보였습니다. 훨씬 연하의 크리스티네는 여행도 하고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기 위해 내과 의사로 개업하고 있던 것을 고만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처는 훌륭한 의사’ 라고 자랑스럽게 말 했을 때 저는 크리스티네가 자기 일을 고만 둔 것을 아깝게 생각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남편과 함께 다니면서 이
세계의 수 많은 굵직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것도 뭐 좋을 것 같이 생각 되었습니다.한 해는 년말에 함께 스위스의 좋은 보리바쥐 호텔에서 지낼 가능성을 의논 하였습니다. 보리바쥐의 년말 파티는 부페디너, 밴드가 있는 댄스와 하룻밤을 잘 수 있는 비용을 묶어서 예약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안내 책자를 보고 비용을 보니 그 하룻밤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과분한 것이라 망설였습니다.
“글쎄요 한번 의논해 봐야 하겠는데요”.
“인생은 너무나 짧은데. 연기 하지 말고 우리 넷이 함께 가서 멋지게 지냅시다”. “음...........” “이왕 말이 난 김에 이건 영자씨와 제가 아주 정해 버리지요”. 저는 혼자 웃으며 결단력 있게 밀고 가는 힘이 대단 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그의 힘에 끌리어 큰 맘 먹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검은 색이 나는 긴 드레스를 하나 챙겨 넣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에 사
서 긴 옷이 필요 할 때마다 울궈먹는 옷입니다. 긴 옷은 어쩌다 한번 입는 것이라 드라이만 해 놓으면 누가 봐도 새 옷처럼 다시 살아나니까요. 얘기 듣던 대로 보리바쥐는 품위 있는 좋은 호텔이었습니다. 연말의 분위기를 위하여 크리스탈로 깍아 만든 여러 개의 큼직한 별이 하얗고 넙적한 리본에 매달려 천장에서부터 내려져 있었습니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반사되는 빛을 내는 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천장이 높은 아름다운 연회장에는 수많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쪽에는 밴드가 있었고 춤추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정 반대 쪽에는 테이블에 뷔페 음식이 놓여 있었습니다. 술에 대한 상식이 꽤 있는 우리 남편과 디터가 술을 골랐습니다. 해물이 많은 전채요리를 위해 화이트와인으로 시작하고 메인코스를 위해서는 붉은 포도주를 골랐습니다.
접시를 집기 전에 걸어가면서 테이블 전체를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어떤 음식을 집을 것인지 대강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맛이 있어 보이는 갖가지 음식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음식에서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런 때는 저도 좀 왕창 먹을 수 있는 고무로 된 배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 하지요. 커다란 접시에 차가운 음식 몇 가지를 얹었습니다.“여기 영자씨 모르는 음식 없지요?” 디터가 물었습니다.“맨 모르는 것이에요.” “참 정말 잘 만들었는데요” 과연 호텔과 레스토랑 사업으로 유명한 스위스 답다고 생각 했습니다. 바다가제를 비롯한 여러 해물 뿐 아니라 고기로 만든 음식도 그렇고 다 하나 같아 맛이 있었습니다. 단 한가지도 맛이 빠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후 따듯한 음식을 가지러 갔습니다. 줄을 선 곳으로 갔습니다. 두 팔을 벌려도 감싸 지지 않을 만큼 지름이 큰 치즈 덩어리의 속을 파내고 거기다가 리조토 (질축한 이태리식 쌀밥) 를 담아 놓고 서브 하고 있었습니다. 리조토에 그 치즈의 맛도 배이고 보기도 좋을 뿐 아니라 서브 하는 동안 그 음식을 따듯하게 보존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요. 그 아이디어가 너무나 좋다고 생각 했습니다. 약간 씹히는 맛이 있으면서도 치즈의 맛이 적당히 가미 되었고 넣은 듯 만듯한 크림 때문인지 거의 찰기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식지 않게 하기 위하여 따뜻한 불을 가까히 켜 놓고 고기를 자르는 데서 몇점 저며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데서는 후식도 굉장 할테니 먹을 자리를 좀 남겨 두었습니다. 자정엔 샴페인을 터트리고 서로 새해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우리는 독일 듀셀도르프에서 치른 디터의 회갑 잔치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 옛날 친구를 비롯해서 사업 관계로 아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손님 중에는 큰 인물들이 꽤 있다”고 한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기막히게 우아한 동양 여자가 눈에 뜨였습니다. 중국 여자라고 하더군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수평선’ (Lost Horizon) 에서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 잡은 여인을 생각 했습니다. 깊고 깊은 산속 고지대에 있는 그 샹그릴라 (천국) 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아름다운 바로 그 여인 말이지요. 디터의 말에 의하면 한 헹켈 중역이 중국에서 그 여자를 만났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층의 연회장에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음식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일류 음식이었습니다. 정성을 들여 고른 메뉴 였습니다. 오페라 가수의 독창이 있었고 크리스티네는 디터에 대한 시를 써서 우리 모두가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의 끝 절이 맞게 쓰느라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드린 선물을 사서 주는 물건 보다 훨씬 더 귀하게 여기더군요. 사람들은 자리를 옮겨 가며 대화를 나누었고 음악과 댄스로 늦게까지 파티가 연장 되었습니다. 옆에 앉은 헹켈 중역으로부터 전 세계에 5만 3,000명이나 되는 직원이 있다고 하여 저는 놀랬습니다. 디터가 있는 동안 사업을 상당히 크게 늘렸다고 덛붙였습니다. 이제 그는 거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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