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자유기고가)
중(中)이라는 글자 내원을 보면 이동 생활을 하던 유목문화와 정착생활을 하던 농경문화에서 얻은 감각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목 생활에서 동물의 표피를 벗겨서 펴 놓든가 걸어 놓고 보면 모두 좌우 양면이 합해져서 하나의 정면을 이루는 중(中)의 대칭으로 균형감각을 준다. 원시형태에서 벗어나 그 다음은 O 에다 I 자를 새로 지르는 글자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하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도모하는 자세다. 이런 모양새를 갖춘 것은 삶의 행위는 위 아래, 이쪽과 저쪽, 사방, 안팎 어디서나 무엇에게나 중화(中和) 시중(時中)하지 않음이 없는 상태로 표현된다.
중(中)의 개념은 “한복판” “가운데”이라는 뜻으로 “바깥” 과 구별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나와 남 그리고 안팎의 연관성에서 판단되거나 설정되어야 한다. 여기에 치우치지도 않고 저기에 기대지도 않으며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는 그 ‘점’을 중(中)이라고 정의한 중용(中庸)의 글자풀이를 주자(朱子1130-1200)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아의 기본을 세우려면 반드시 중심이 어딘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중심이란 나를 둘러쌓고 있는 외변 주위를 먼저 파악 하고서야 나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중이란 전(全)의 주위를 둘
러쌓고 있는 것에 따라 중의 자리가 정해지는 것이지 먼저 중에 맞춰서 주위를 구조하거나 안배하는 것은 아니다. ‘중’이란 늘 고정된 것일 수 없는 시변(時變)의 뜻도 함께한다.
중(中)이라는 글자는 중국이 나라이름으로 쓸 만큼 중국의 문화, 철학, 사상, 생존방식, 등에 있어서 그들의 표준이자 중심이 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와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동반 관계에 놓여 있다.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때로는 우리의 적이 되었다, 우방이 되었다, 해아릴수 없이 많은 전쟁과, 화합, 공존하는 문화와, 배타적인 이질문화, 그런 속에서 21세기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에 힘입어 정치, 군사, 교육, 문화, 체육, 다방 면에서 탈바꿈 하고 있다. 그들이 21세기 지구촌에서 중심을 찾으려면 바깥 주위부터 화목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번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13억4천만 명의 중국인이 4천만 명의 한국인과 김연아에 대한 찬사와 부러움을 함께 가지고 있다. 행여 그 속에 시기와 질투가 있지 않을까? 우리 또한 그들을 자만심으로 보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밖과 안 내외(內外)가 알맞게 들어맞아 화합을 이루는 중화(中和)의 ‘중’과 세월 따라 세계가 변하는 시중(時中)의 ‘중’이 조화를 이룰 때 중국은 물론 한국과 세계가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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