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좁은 길에 다니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범벅이 되어 구경을 하면서도 너무나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침 열시부터 밤 열시까지 교통을 차단하여 보행자만 다닐 수 있게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게 생각 되었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으셔요? 한국이 현대적으로 발전한 것도 너무나 좋은데요 멋지게 새로 지은 현대적인 것만 있으면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구경갈 필요가 있을까! 관광객이 오는 것을 그렇게 원하면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외국사람들이 가면 한국적인 것을 볼 수가 있어야지요.
우리나라에 예술적인 멋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새로 짓는 곳이라도 어느 길이나 동네를 아주 한국적인 멋을 살려서 짓도록 정부에서 밀 수 없을 까요? 다음날 우리 그룹이 골프를 치기로 한 공항 근처의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는 데 몇 직원들이 “안녕 하십니까?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네, 안녕 하세요?”하고 저도 명랑하게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한 것은 저 뿐이고 동행한 남자 분들은 모두 천장만 쳐다보며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 이것이 한국식인 것을 다 잊어버렸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외면에 비친 그런 광경이 제게는 너무나 웃음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여자들의 힘이 너무나 세어졌더군요. 제가 남자 세상 때에 한국을 떠나 지금은 여자 세상이 된 한국을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적이 많았습니다.
대학동창이 하는 말이 제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 라는 선서를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하나도 기억에 없는 말입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제가 자랄 때는 한국에서 남자들이 까놓고 첩을 얻는 일이 많았습니다. 옆집에서 투당탕 거리며 싸우고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리면 의례히 남자가 첩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뒤쪽에 있는 집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유는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를 제일 예뻐하시니 너 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주위의 압력을 제가 감당
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부의 불화를 자식이 어떻게 해결 합니까? 먹으면 체하고 수도 없는 검사를 하였어도 어느 의사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먹기만 하면 살로 가던 토실토실하던 몸이 빼빼 말라만 갔습니다. 저는 오로지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재학 시 아르바이트로 한국말을 가르쳐 드린 독일 신부님의 주선으로 저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가족들과 울음바다를 만드는 (옛날 얘기지유)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였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끔 가족을 방문하였지만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남편이 사업관계로 알게 된 김 사장님의 초대로 한국의 이모저모를 보게 될 기회가 여러 번 생기게 되었습니다. 김 사장님은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사업가 이시구요. 참 털털한 면이 있고 통이 큰 분이십니다. 농촌 출신이라 건강하다고 말하는 순박한 부인의 학례라는 한국식 이름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목소리가 멋있는 김수 사장님. 사업가의 재질과 한국 선비의 재질을 겸비 하신 신사. 부인 애나와 어찌나 다정하신지요 지금도 두 사람은 연애하는 대학생들 같이 보였습니다. 애나는 항상 음식 얘기를 침이 넘어가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먹을 때마다 이거 먹어 봐라 저것은 이렇게 싸 먹어라 챙겨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다시 태어나면 그집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였겠어요.
끊임없는 유모어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시는 박 회장님. 웃지도 않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스믈스믈 얘기를 하시는데 그 분이 계시는 곳에는 항상 주위 사람들이 웃음이 넘쳐흘렀습니다. “집에서도 저렇게 재미 있으셔요?” 궁금해서 부인께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왜 밖에서 하는 일을 집에서는 일절 안 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재미있고 또 지극히 자상한 더 없이 훌륭한 남편이에요”. “또 제가 원하는 것을 알면 수소문해서 꼬옥 구해 주구요” 사랑에 대한 노래를 나와 부르면서 부인을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손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야, 한국이 많이 변했네요.
“아이 러브 유” 라는 말을 가볍게 하는 서양의 얕은 제스처 보다 은근히 생각 해주는 그 정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여자에게 바라지 않고 (지금은 다른가요?) 자기 능력이 되면 의례히 돌봐 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 하는 것도 한국 남자들의 푸근한 점이 아닙니까?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지만 있으면 느끼는 그 정 말이지요.
제주도에서는 옛날 유적을 돌아보고 경치 좋은 서귀포에서 한 나절을 보내고, 민속촌을 기웃거리기도 하였습니다. 해녀가 따 왔을 지도 모르는 성게 알을 넣은 미역국도 먹어 보았습니다. 세계 어디다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골프장을 돌아보면서, 정 회장님이 지으시는 새로운 리조트를 구경 하면서,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마을을 보면서 ‘제주도라면...?’ 하는 의문
을 던져 보았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고향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곳에서는 한국적인 멋을 살린 새로운 마을이 생길 자리가 있을지도! 그리고 한국에 기여 할 수 있는 무슨 일을 찾을 수도 있다는 공상을 하였습니다. 돈 안 드는 게 꿈인데요 뭐!
살고 싶은 집은요 현대적인 편리한 시설을 갖춘 부엌 (무지하게 중요한 것)과 욕실에 한국적인 멋을 살린 바다가 보이는 기와집이어야지요. 사라져 가는 해녀의 마지막 모습도 볼 수 있어야 하구요. 최고의 건강식인 두부 찌게를 보글거리게 끓이며 싱싱한 생선을 다듬고. 방망이로 더덕을 살살 두드려 양념 고추장을 바르는 제 자신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맛이 있는 막걸리도 있어야 하구요. 윤재씨가 만들어준 작품인 멋있는 찻잔에는 따끈한 김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한식 생각이 어찌나 굴뚝같아 지는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노오란 버터가 눈으로 들어 왔습니다.
“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58)서울
미국은 싱거운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난 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폭발하는 인구로 숨이 막히지만, 곳곳에 재미난 곳, 멋을 부려 장식한 상점, 식당, 까페 등이 산재해 있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서울입니다. 모두들 왕래가 잦아, 어디가 좋은지 많이 알고 있겠지만 최근 여행에서 몇 군데 방문한 곳을 소개 하고 싶습니다.
인사동 골목 끝, 안국동 쪽에 자리잡은 아담한 솥밥집 “조금”(02 725 8400) 안국동에서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얘, 조금에서 만나자” 하길래 가서 두리번 거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간판이 鳥金이라 쓰여진 것을 보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혼자서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이 집은 수수한 집인데 솥밥(12,000원)을 아주 맛있게 하여 인사동에 갈 때
마다 으레히 발길이 그 곳을 향합니다.
재동의 “달개비”(02 765 2035)는 야생화를 일컫는 그 이름이 말하듯이 자연 음식을 전문으로 합니다. 별로 크지 않은 공간에 자그마한 뒷마당이 멋지게 내다보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깥 벽을 끼고 올라 갑니다. 정원이 내다보이도록 그 계단을 유리로 둘러 싼 건축가의 디자인을 감상하며 이층으로 올라 가보니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큼직한 산수화가 걸려 있습니다. 한치회에 돌나물을 넣고 무친 것, 얇게 저며 나온 숫불 구이는 산 약초인 고수를 고추장에 무쳐 곁들여 나오는 것 등 코스 요리(27,500원)가 아주 감칠맛이 있습니다.
역삼동의 “참숫골”(02-565-2778)의 숯불구이는(18,000원부터 45,000원까지)어느 곳보다 고기 맛이 최고인 집. 실파 같이 가는 부추를 주방장의 비결인 쏘스에 무쳐 먹는 맛이 그만입니다. 강남의 “용수산”(02-546-0647)은 품위 있는 개성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역시 개성 사람이고 요리 솜씨가 대단 하셨던 우리 외할머니 음식 생각이 나게 하는 곳입니다. 깔끔한 정식 요리가 (31,000원부터)코스로 서브 되어, 귀한 손님을 모시고 가기에 꼭 알맞는 곳입니다.예술의 전당에서 멀지 않은 서초동의 “우면산 버드나무집”(02 597 5900)은 먹음직스럽게 양념하여 말은 갈비(36,000원-식사는 별도)를 갖고 와서, 구운 후에 잘라 줍니다. 계절에 맞게 단 호박에 붉은 콩을 넣은 것을 비롯하여, 뿌연 식혜, 심지어는 누룽지까지 맛이 있었습니다.
강습을 통해 알게된 분들 모두 소중한 인연입니다.
<한국 이야기를 끝으로 일단 저의 긴 요리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열심히 읽어주시고 격려도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한국일보 레저난에 진기한 세계 요리를 소개하는 요리연구가 김영자의 ‘맛의 여행’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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