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동 고문
하와이 민주평통협의회
촛불시위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고 했던 사건은 안보문제와 직결되어 있기에 단순한 문제로 생각하고 넘길 일은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MBC-PD 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라는 프로그램 방영 후 서울 시중의 촛불시위가 마치 불바다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MBC-PD 수첩 방연 후 나돌았던 괴담의 근원이 어디였을까?
소를 이용해 만드는 라면, 캡술약, 과자, 식품은 물론 화장품, 생리대, 기저기 등 수백 가지 제품을 사용하면 광우병에 전염된다. 광우병 쇠고기를 자른 칼과 도마에 의해 수돗물까지도 오염된다.
이 정도면 나라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안감 선동 능력이 대단하였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인데 죽기 싫어요 하고 촛불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촛불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려 했고 경찰과 충돌하여 많은 부상자도 발생하였다. .
필자가 이미 지난 쇠고기 파동을 거론하는 것은 좌 성향의 활동은 60년간 이어 왔고 조용했던 하와이 한인사회에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어 촛불시위는 곧 반미감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실히 알고자 함이다.
하와이에서도 남북평화협정을 위한 촛불 대행진을 주도한 사람들이 있다. 60년 동안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목적은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주한 미군은 철수하게 된다.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후 미군정이 1949년 한국을 떠났고 이듬해 1950,6.25 남침이 일어 났다.
좌성향의 평화협정 주장은 미군 철수의 선동 논리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어째서 촛불시위를 우리의 우방국 미국에 대한 반미감정의 표현으로 삼는가? 일본이 2005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지정 중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문제 등으로 한일간 심각한 외교분쟁이 일어 났을 때 항일 촛불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7월 독도는 일본명으로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임을 교과서에 명기하였는데도 촛불 시위는 없었다. 2008년 7월 금강산에 갔던 한국관광객 여성이 인민군에 피살 되였는데도 북한을 규탄하는 촛불 시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효순과 미선의 교통사고와 한미 FTA 협상 반대시위 등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때는 2004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935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2008년 부시 대통령의 방한 반대 촛불시위를 했고 한미간 문제는 무조건 촛불 시위로 이어졌다.
상대가 중국이나 일본일 경우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좌성향의 선동 조직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안함 급변사태도 촛불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용했던 하와이에서 전쟁 60주년 기념 전시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전시회와 관련한 유인물을 우리는 꼼꼼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내용인즉 6.25는 남침이 아니고 1948년 1949년 때 38 경계선 부근의 남북 양쪽의 군인들이 서로 자주 총질을 하다가 발생한 것이라며 은근히 남침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 6.25때 미군이 퍼부은 폭탄으로 북쪽뿐만 아니라 남한까지도 초토화 시켰다며 2차 대전 때나 월남전에서 보다 더 많은 폭탄을 사용 했다고 하는데 중공군과 인민군이 소련제 무기까지 사용하며 6.25 새벽에 10만 대군이 남침하여 남쪽 중부지방을 죽음의 불바다로 만들었던 것은 왜 거론하지 않는가!
올해는 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다. 남북은 정전 협정상태며 남북 불가침 조약까지 체결되어 있으나 60년 동안 북쪽에선 남쪽의 조그마한 틈만 있으며 여지없이 공격해 왔다.
수많은 급변 사태를 겪었고 최근의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남북전쟁이 재발할 이유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1961년 중조 상호 합작 호조 조약이 맺어졌고 1953, 10.01은 한미상호 방위 조약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남북문제는 곧 미국과 중국의 문제로도 해석 할 수 있어 남북전쟁의 발단이 미국과 중국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으니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천안함 사건 같은 만행을 저질러도 남한이 단독으로 무력도발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비숍 박물관에서 전쟁60주년 기념 전시장에 배부 될 것으로 짐작되는 유인물 내용에 1948년 미국은 유엔의 형식적 승인하에 남쪽만의 분리 대통령 선거를 강행 했다고 하며 이는 북의 항의와 단독 선거가 민족분단을 고착화 시킬 것으로 지적했으나 만약 당시 남한만의 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키지 않았으면 또 민족주의자라는 사람들의 뜻대로 했으면 분단이 안된 대신 우리모두가 공산치하 지상 최악의 환경 속에 살고 있을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1948년 9월21일 유엔 3차 총회에서 유엔 가입국 58개국이 유엔결의 195호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조국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 긴장하며 구석구석 꿈틀거리는 좌성향 세력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