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던 한국 사람들을 잊지 못합니다. 떡볶이, 물만두, 짜장면...또 먹고 싶네요.”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 부모를 따라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돌아온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인상이다. 몸은 미국에 와있어도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한국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이 8일부터 10일까지 워싱턴에서 연례 동창모임을 갖고 있어 화제다.
‘서울 아메리칸 고등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번 동창회의 예상 참여 숫자는 대략 200여명. 워싱턴에서는 두 번째 갖는 모임으로 역대 최대 숫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 동창들의 연령도 70년대에 졸업한 40, 50대부터 지난 2003년에 졸업한 사람까지 매우 다양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서울 아메리칸 고교 동창들은 8일 크리스탈 시티 소재 하이얏 리전시 호텔에 여장을 풀고 9일 저녁 ‘크리스탈 스포츠 클럽’에서 전체 모임을 열어 반가웠던 얼굴들을 만나 회포를 푼다. 9일 낮에는 워싱턴 DC 내 링컨 기념관을 방문해 영원한 추억이 될 그룹 사진을 찍을 계획도 세웠다.
1979년 미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던 캐슬린 린씨는 서울 아메리칸 고교를 졸업한 뒤 가족과 헤어지는 게 싫어 대학도 한국서 다니기로 결정했다. 메릴랜드대 서울 분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동시에 입학했다. 아버지 때문이기는 하지만 청춘의 일부를 보내게 된 한국이란 나라의 말과 역사가 궁금했다. 이화여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야간에는 메릴랜드대에 다녔다. 린씨는 “이화여대는 비록 일년 밖에 안 다녔지만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라며 “서울 외에도 친구들과 함께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회상했다.
서울의 골목들을 누비며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던 즐거움도 많았지만 1979년 10월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다음해 서울을 뒤덮었던 데모 군중을 보았던 공포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을 통제하던 군인들은 한 가게 여주인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쳤고 그녀는 린씨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한국 생활 중 그런 어두운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린씨가 그리워하는 한국은 늘 반가움의 대상. 그는 “이번 모임에서 최근에 한국에 다녀온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실컷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미군등 한국 거주 미국인 자녀들 교육
미군이 주둔했던 서울 용산 캠프 내에 소재한 학교로 국무부, 주한미국대사관, 군 등에 근무했던 미국인들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1959년 설립됐으며 1967년 대구에 두 번째 학교가 생겼다. 현재 미 국방부는 동두천, 진해 해군 기지, 오산 공군 기지, 평택 등에도 학교를 설립해 한국 거주 미국인 자녀들을 교육하고 있다.
현재 서울 아메리칸 고교 재학생은 670명. 미국 내 고교들과 비교해 상위 15% 안에 드는 우수한 수준을 자랑한다고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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