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가 산으로 사냥을 갔다. 그런데 커다랗고 험상궂은 곰이 별안간 나타났다.
이 때 나무를 잘 타는 한 친구는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올라가 버렸다.
그러나 남은 한 친구는 나무를 올라갈 재주가 없었던지라 그는 혼자서 그 큰 곰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짧은 순간에 생각해 낸 것이 죽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땅에 엎드려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이 때 곰이 달려들어 냄새를 슬쩍 맡고는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잡아먹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무 위에 올라갔던 친구가 내려와서 그 친구에게 물었다.
“곰이 네 귀에 대고 무엇이라고 하고 갔니?”
죽을 뻔했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같이 나쁜 친구는 사귀지도 말고, 같이 다니지도 말래.”
그리고는 혼자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연탄 공장 옆에서 놀면 그 옷은 더러워지게 마련이다.
논어 중에 이로운 세 친구, 해로운 세 친구가 있다. 익자삼우(益者三友), 손자삼우(損者三友)라 하였으니 유익한 벗 셋이 있고, 해로운 벗이 셋 있다고 한다.
익자삼우란 우직, 우량, 우다문이며, 유익한 벗 셋이란 정직한 벗, 성실한 벗, 박학다식한 벗으로 정직하고 곧은 사람을 벗하여 그 허물을 듣고 미더운 사람을 벗해 성실히 나아가며 학식이 높은 사람을 벗하면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로운 친구 셋이라 한다.
손자삼우란 우편벽, 우선유, 우편녕이다.
해로운 벗 셋이란 아첨하는 벗, 굽실거리는 벗, 말재주가 능한 벗으로 위엄이 없고 곧지 않으며 치우친 사상을 가진 벗과 아첨하여 굽실대며 순한척하나 성실하지 아니한 벗과 말재주가 좋아 둘러대기만 잘하고 듣고 봄에 실상이 없는 벗을 해로운 친구 셋이라 한다.
또 유익한 즐거움이 셋, 해로운 즐거움이 셋 있으니 예로써 조절하는 일을 좋아하고 남의 착함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한 즐거움이 된다고 한다. 교만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안일하게 노니는 것을 좋아하며 주색의 향연을 좋아하면 그것이 해로운 즐거움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친구가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삶만을 추구하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게 마련이다. 잘 나갈 때야 이기적으로 살든 이타적으로 살든 상관없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화창한 것만은 아니다. 순조롭던 인생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어 헤맬 수도 있고 암초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이기적으로 인생을 산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친구란 당신이 그리움 속을 헤맬 때에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이며, 친구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하는 사람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친구는 나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는 사람이다.
좋은 친구를 사귈 때 인생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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