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숙종임금이 야행을 나서 빈촌을 지나가는데 어느 허름한 초막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부촌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 임금은 그 까닭을 알아보려 주인을 찾아 물 한 사발을 청했다. 그리고는 살펴보니 백발의 할아버지는 새끼를 꼬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짚을 고르고,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아낙은 옷을 깁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들 표정이 밝아 근심걱정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듯싶어 주인에게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주인은 만면에 희색을 띄우며 "빚 갚고 저축도 하면서 부자로 살지요. 부모님 봉양으로 은혜에 보답하고 아이들을 키워 노후를 준비하니 어찌 이보다 더 부자일 수 있겠소?"
지인이 이메일로 전송해준 고사(古事)다.
예전 같으면 당연지사이거늘 요즈음은 어느 먼 별나라이야기처럼 느껴지니 세월이 흘러 세태가 많이도 변했구나싶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아침마다 안방으로 건너오셔서 할머니 이부자리 밑에 손을 넣어 밤새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였는지 살피셨다.
할머니 좋아하시는 반찬거리를 손수 사러 다시셨고, 며칠간 출타라도 할양이면 큰절 올리고서야 길을 떠나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귀가해보니 집 대문 고리에 커다란 황소 두 마리가 묶여 있었다. 누구네 소일까, 아버지에게 여쭈었더니 오라비 대학등록금 때문에 위탁 사육하던 소를 팔려고 데려왔노라 하셨다. 그리고는 ‘노후를 생각하면 소를 팔지 말아야 하는데’ 라며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결국 아버지는 소 팔아 등록금을 해결하셨고, 사회인이 된 오빠는 아버지 임종하실 때까지 정성껏 봉양했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빚도 갚고 저축도 하며 사셨던 셈이다. 노후에 마음까지 편안한 진짜 부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당신 적금을 쓰시며 생을 마치셨다.
오랜 불황 탓일까, 뉴스에 요즘 미국사회 일각에서 집 떠났던 자식들이 부모 곁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은퇴를 앞둔 부모들은 정년을 연장해가며 일을 계속한다는데 과연 행복한 재회일까, 아니면 과중한 부담일까.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대가족시절 할머니가 벽장 속 과줄바구니에서 알사탕을 꺼내주시던 시절이 그리워지니 나는 진짜 부자체질인가 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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