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영원한 에이스 최동원이 삼성과의 지난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역투하는 모습. 최동원은 이 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는 전무후무의 대 기록을 세웠다. <연합>
한국 프로야구의 큰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1980년대 프로야구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코치가 14일 오전 2시2분(한국시간) 향년 53세를 일기로 지병인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이로써 올해 출범 30돌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지난 7일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나인 장효조 삼성 2군감독을 잃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이번엔 역대 최고 투수인 최동원을 떠나보내는 충격과 슬픔을 맞게 됐다.
한화 코치로 있던 지난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한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지난해부터 병세가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왔다.
유족 측은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일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경남고와 연세대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최동원은 한국야구 100년사에서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더불어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현역시절 최고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가 주무기였던 그는 특히 타자를 압도하는 승부 근성과 눈부신 연투 능력으로 ‘무쇠팔’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작성해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낸 그는 이듬해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솎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했던 1981년에는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최우수신인상을 싹쓸이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한 뒤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최동원은 1984년 한국은 몰론 세계 야구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업적을 쌓았다.
그 해 27승13패 6세이브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둬 정규리그 MVP로 뽑히며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견인한 최동원은 특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1, 3, 5, 6, 7차전 등 5경기에 나서 혼자 4승(1패)을 따내며 사실상 혼자 힘으로 롯데를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7전4선승 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둔 것은 앞으로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불멸의 대기록이 분명하다.
이듬해에도 20승을 올리는 등 롯데 에이스로 활약하던 고인은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하고 나서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했고 이후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이후 한화 코치와 방송 해설가, KBO 경기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나 고인이 마지막으로 희망했던 고향팀 감독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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