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개가 결혼한대. 오는 토요일에, 애 딸린 남자랑…”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을 들춰보며 한해의 마무리를 고심하던 중에 걸려온 한통의 국제전화. 마지막까지 싱글을 고수하던 친구가 드디어 시집을 간단다. 마흔 다섯에 초혼이면 아무리 만혼이 유행인 요즘도 확실히 늦긴 늦은 결혼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난 때가 적령기지, 결혼적령기가 따로 있을까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려고 저리 버티나” 궁금해하다 그녀의 결혼은 거의 잊혀진지 오래.
일단 노처녀가 결혼을 한다니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이긴 한데, 뒤에 붙는 말들이 영- 석연찮다. “기왕 늦게 하는 결혼, 좀 더 잘 고를 것이지” “요즘은 연하가 대세라는데..” “노부모랑 같이 사는 장남이래” 등등. “그게 어때서? 재주 있으면 니들은 차남만 낳아라.”고 했지만 그녀를 아까워하는 친구들의 얘기나, 그들을 타박하는 나의 말이나 다 쉽게 하긴 마찬가지다.
이 세상 어느 사랑치고 소중하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일등 신랑감, 백점짜리 신부, 수준미달 배우자, 누가누가 밑지는 결혼” 등 남의 사랑에 자기들 잣대로 점수를 매겨댄다. 하긴 친구가 외국계 은행 차장이니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능력 있으면 됐지, 그냥 혼자 살아라” 고 말하는 동창들도 많았다. 나 역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 친구의 성품을 잘 아는 터라 조금은 염려도 했다. 양보하기 좋아하고, 말이 적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 자기 성격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진다며 명랑 쾌활 솔직한 내가 좋다던 친구.
36년전 일이다. 그 친구와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도블럭 사이에 끼인 은빛 동전을 발견한 적이 있다. 당시 과자 한 봉이 10원이었으니 50원이면 초등생들에겐 제법 큰 돈이었다. 경찰서에 갖다 줄까. 둘이 나눌까. 같이 과자를 사먹을까. 등등을 고민하다 “이것 없었으면 이런 쓸데없는 고민도 안 할텐데 그냥 없던 셈치고 던져버리자”고 내가 제안했고 “그래, 좋은 생각이야” 라며 친구가 동의해 지나던 돈보스코 회관 담벼락 너머로 던져버린 기억이 난다. 나중에 친구 왈, 사실은 나에게 다 주고 싶었다고… 왜 그때 난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걸까. 자기보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던 마음 따뜻했던 친구.
“사랑하는 내 친구야, 실로 오랜만에 접한 너의 기쁜 소식에 내 마음은 한없이 설렌다. 백합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입은 너의 모습을 못 보는 게 아쉽지만, 오랜 시간 신중하게 결정한 너의 선택에 진심어린 축하의마음을 전한다.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렴…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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