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초를 좋아한다. 식료품을 사러 가더라도 맘에 드는 양초가 있으면 몇 개씩 사다가 쌓아 놓는 사치를 부린다.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켜고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우아한 색깔도 은은한 향도 그리고 켜 놓았을 때의 분위기까지 모두를 좋아한다. 굳이 크리스마스파티 상차림이나 추수감사절 만찬 때가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먹는 매일의 저녁 시간, 심지어는 혼자 라면을 먹을 때조차 초를 켠다. 이런 고상한(?) 내 취미를 아는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사주에 불의 기운이 부족하여 스스로 금의 기운을 상쇄하기 위해 초를 켠다는 그럴듯한 해석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악명 높은 청국장이나 여타 다른 냄새를 잡는데는 단연 최고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초를 켜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의식일 때가 많다.
매일 아침 어슴푸레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면 나는 맨 처음 촛불을 켠다. 몇 년 동안 이어져 굳어진 일상의 습관으로, 특별한 종교 의식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언젠가 보았을 아니면 어디선가 읽었을 한 장면인 ‘장독대 위 정화수 한 그릇과 초 한 자루’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새벽 기운에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 같은 간절함과 신성한 기분마저 든다.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과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강한 에너지 그리고 진심으로 우러나는 감사함이 가슴으로 물밀듯이 세차게 밀려 옴을 느낀다.
고 3 수험생 시절 친구를 따라 처음 가 본 교회에서 기도하던 친구의 옆 모습에서 느꼈던 범집할 수 없는 신성함과 어릴 적 할머니와 갔던 어느 사찰에서 두 손을 모으고 끝없이 절을 하던 분들의 간절함이 촛불을 켜는 내 마음 어딘가에 있으리라.
인기척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딸 아이는 떠지지 않는 두 눈을 비비고 앉아 흔들리는 촛불을 응시하면서 서서히 정신이 드는가 보다. 아이도 어렴풋이 아침의 일상이 된 의식에 익숙해져 차분히 아침을 맞이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 아침마다 촛불을 켜는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으로 밝고 환한 마음을 가지고 촛불을 켜기 시작한다면 좋겠다. 그래서 촛불처럼 늘 따뜻하고 촛불 켜는 착한 마음씨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상항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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