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창밖이 온통 회색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집안은 더 따뜻한 오렌지 색깔이 되며 맑은날보다 더 대비가 된다.
작년에 사다가 걸은 커다란 풍경화 두 작품이 있다. 아크릴로 그린, 흔히 볼 수 있는 19세기 유럽 도시의 거리풍경이다.두 그림이 정확히 똑같은 풍경인데 한 작품은 흑백 모노톤으로, 다른 작품은 컬러로 칠해져 있다. 액자가게에 들렸다가 먼저 흑백의 유럽풍경 그림을 우연히 보았을 때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었다. 시간이 이동되어 20여년 전 비엔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흑백에 어두운 회색톤의 건물들 사이로 비가 온듯 젖어있는 도로와 멀리 구름이 가득한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건물 안의 불빛만 노란색, 오렌지색으로 조금씩 칠해져 있었는데, 추운 바깥 색깔과 대비가 되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인파 속에 첼로를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가끔씩 멈춰서서 따뜻한 불빛을 들여다보는.
비엔나에서의 나의 첫 겨울은 정확히 이 색깔이었다. 어둡고, 춥고, 의미가 없는. 아직도 그때의 싸한 느낌이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전해져 온다.
또 다른 한장의, 같은 거리인데 컬러로 칠해져 있는 그림은 정말 밝고 화사한 색깔들로 채워져 있다. 온갖 색깔이 다 들어가 있고 파란 맑은 하늘에 하얀, 장밋빛 구름, 그리고 거리에는 화려한 빛깔의 꽃들이 보인다. 행인들의 옷차림도 다양하다. 환한 색깔이 들어간 것만으로 그림 속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미국인 선교사님 부부를 우연히 만나고, 즐거운 교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나의 유학시절의 색깔은 이렇게 컬러풀했다. 13개의 다른 국적들이 모여 있던 교회 친구들과 시내 한복판에 나가 독어로 전도를 하고, 찬양 밴드에서 첼로로 컨트리 가스펠을 연주하고, 추운 겨울 밤늦게 수업을 마치고 첼로를 메고 꽁꽁 얼은 길을 걸으며 마음에 소망과 기쁨이 가득했던 그 시기의 비엔나는 나의 기억속에 아름다운 색깔들로 가득하다.
같은 환경과 같은 상황속에서, 이렇게 다르게 나의 시간을 색칠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들을 사서 걸으면서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시간을 색칠하자고. 앞으로의 기억속에 회색이 아닌 아름다운 색깔들이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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