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1947년 4월15일 지금은 사라진 브루클린 다저스의 홈 에벳츠 필드에서는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흑인이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UCLA 출신의 만능 선수 재키 로빈슨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에 수많은 중남미, 한국, 일본 선수들이 아무런 장애없이 뛸 수 있었던 것은 인종차별을 뛰어 넘은 로빈슨 덕분이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버드 실릭은 이날 성명을 통해 “메이저리그는 해마다 로빈슨의 뜻을 받드는 게 영광이며 자랑스럽다. 42번을 보면서 우리의 어린 팬들이 로빈슨의 용기, 명예, 투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했다. 셀릭 커미셔너는 최초로 색깔의 벽을 허문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50주년이었던 1997년 42번을 영구결번시켰다. 현재 기존의 이 번호를 단 뉴욕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만이 42번을 달고 있다. 해마다 4월15일에는 메이저리그 전 선수들이 42 등번호 저지를 입고 출전한다.
로빈슨을 탄생시킨 다저스는 더 각별한 의미를 새겼다. 15일 화창한 날씨의 다저스타디움에서는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경기에 앞서 로빈슨의 브루클린 다저스 동료였던 투수 돈 뉴컴과 외야수 토미 데이비스가 세리머니 시구를 하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선수들은 42번 저지에 브루클린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출장했다.
다저스의 중계를 63년째 맡고 있는 빈 스컬리도 로빈슨의 65주년을 맞아 중계석으로 돌아왔다. 스컬리는 “의사가 외출을 자제하라고했으나 오늘 기온도 올라가고 로빈슨의 65주년이기도 해 복귀하게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84세의 고령인 스컬리는 지난 10일 심한 감기로 다저스 홈 개막전부터 결장하고 있었다.
로빈슨은 1947년 4월15일 다저스의 1루수로 출장해 10년 메이저리그 활동하며 통산 타율 0.311 홈런 137 타점 734개를 남기고 196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신인왕과 1949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로빈슨은 1956년 시즌 후 앙숙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으나 이를 거부하고 영원히 다저스맨으로 남았다. 은퇴 후에는 민권운동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뇨병으로 53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흑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재키 로빈슨이 꼽힌다.
<다저스테디엄-문상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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