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당당하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책 만드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해온 내게, 올해 초 시작하게 된 짜장면 집 아르바이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해주었다. 사실 일을 시작할 즈음에는 살짝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단순 작업들이었기에 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님 맞이하고, 물 나가고, 주문 받고, 음식 나르고, 단무지 채우고, 음식 값 계산해서 갖다 주고, 전화 오면 받아서 주문 넣고, 손님 가시면 인사해서 보내고, 상 치우고...여기까지는 오케이. 그러나 열 개의 테이블이 거의 다 차고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요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조금씩 넋이 빠져나가면서 화려하리만치 다양한 실수들이 발생한다.
아무리 정신 줄을 바싹 붙잡고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뛰어다녀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날은 드물었다. 사장님께 핀잔을 듣게 되고, 쪼그라드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그 날도 주문한 것과 다른 소스가 왔다고 불평하는 손님의 전화가 있었다. 죽을 죄를 진 죄인처럼 사과를 하고 다음날 다시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옆에서 이 모든 전화 내용을 들으셨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 그것도 죽을 맛이었다. 결국 마감할 즈음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먼저 얘기를 했다.
사장님은 실수하지 않도록 좀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일은 일이니까 분명하게 지적하지만 집에까지 이 일을 갖고 가지는 말라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덧붙이셨다. 평소에는 야속하리만치 구박을 하시더니 그 날은 아주 친절하셨다.
“잊어버리라고요? 없었던 일처럼? 그럼 내일은 저를 새 사람으로 봐주시는 거예요?” 사장님은 그냥 웃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해놓고 나서 감전이라도 된 듯이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나이도 제일 많으면서 일도 잘 못하는 주눅 든 종업원이 아니라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새로운 모습의 당당한 웨이트리스로, 내가 나를 봐준 첫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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