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전 한 지인이 K-pop 티켓을 구해줘 들뜬 마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가기로 했다.
막상 공연이 열리는 날 남편은 갑작스런 미팅으로 인해 못 가게 되고 대신 딸아이의 친구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First come, first serve인지 모르고 느긋하게 도착했는데 좌석이라곤 드문드문 한자리씩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지 아이들이 떨어져 앉게 되었네…떨어지더라도 일단 앉히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Is this seat taken?”
큰소리로 외쳐대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 넓은 Shoreline Amphitheatre를 휘젖고 다녔다. 정신없이 자리를 찾아 다니고 있는데 나보다 더 큰 목소리의 낯익은 한국말이 들려왔다.
“아줌마! 제가 아까 자리 하나 드렸잖아요. 여기는 제 친구자리예요!”
‘헉! 아줌마 라고 했어? 너 지금?’
그러고 보니 내 꼴이 가관이었다. 질끈 하나로 동여 묶은 머리에 슬리퍼에 한손에는 김밥 비닐 봉다리를 들고 양 어깨에는 물병이 가득 실린 배낭이라니!
한국에서 막 대학원을 마칠 즈음 결혼과 동시에 미국에 와서 학교에 다니느라 한국에 있었으면 자연스레 불려졌을‘아줌마’란 호칭을 접해보지 못했다. 첫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사립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있으면서 나는 Mrs. Bae가 되었다.
백인 학생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음악적 지식을 조금씩 풀어 놓을라치면 어디서 저런 동양 여자가 와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음악을 아이들에게 잘도 가르쳐 주는구나 하는 백인 학부모들의 낌새를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며 Mrs. Bae라 불리우길 즐기며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산라몬 지역에서 학생들에게 개인교습을 하면서는 선생님이라 불리우게 되었고 뷰티플마인드앙상블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하면서는 배아람씨가 되었다.
지난 세월이 필름처럼 지나갔다.‘그런데 내가 아줌마지, 참~.’오늘도 이 아줌마는 볕 좋은 창가에 빨래를 널고 갤런당 10센트 싼 Safe Way 개스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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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람씨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결혼과 동시에 도미. 샌프란시스코 콘서버토리(San Francisco Conservatory of Music)에서 학업한 후
Walnut Creek Christian Academy에서 음악교사와 한인학부모 단체산하 KPA Youth Orchestra 지휘자를 역임했다. 현재 AMASE(구 뷰티플마인드 앙상블)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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