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창이라고 하면서 전화기에 한통의 메세지가 녹음되어 있었다. 희미하게 이름은 떠올렸지만 도무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 입수한 동창 명부를 찾아 부랴부랴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그 동창이 기억이 났다.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학교 동창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그냥 외면한 채 주저주저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니 보낸 것이 아니라 버틴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이루어낸 것이 별로 없다는 자괴감에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리도 반가웠던 동창생 하은이가 몇달 전 LA로 이사를 해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던 중이었다.
나는 이번 전화 메시지를 빌미로 친구와 전화 통화를 시작했고 바로 그 속으로 빠져버렸다. 무엇인가 친구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야 된다는 나의 교만함을 버리니 꼭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삶의 무게가 무거웠었나보다.
학교를 졸업하고 동창들과 헤어진 지 벌써 강산이 4번이나 흘러갈 즈음, 산호세에 살고 있는 동기 몇 명이 서로 연락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첫 만남의 쑥스러움은 잠시였고 마치 늘상 만나던 친구들처럼 우리는 삶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금세 허물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몇 십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토록 궁금하고 만나고 싶었어도 서로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못마땅한 행동이나 마음에 안드는 말들이 섞이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왠일인지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크지 않았고 그리 노여워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벌써 6년의 짧지 않은 시간들을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함께 공유한 추억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한두 달에 한번씩 만나는 동창회가 기다려진다. 언제나 줄곧 ‘동창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기를 바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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