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미학의 정수 소개하고 싶어” 안대회 교수, 10년간 자료 준비 시품 내용·학계 최근 이론 정리
궁극의 시학안대회 지음ㆍ문학동네 발행
‘흐르는 물이 오늘의 모습이라면(流水今日) 밝은 달은 전생의 모습이라네(明月前身)’.
속되거나 잡스러움 없는 절대 순수의 경지를 노래한 이 문장은 당나라 말 시인 사공도(837~908)가 지은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ㆍ이하 시품) 중 ‘세련(洗鍊)’의 한 대목이다. 시품은 시에 관한 스물네 가지 풍격(風格ㆍ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시와 시인에 관한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한 것)을 표현한 중국의 시학서다. 지난 1,000년간 시, 회화, 서예 등 동양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최근 20년간 중국에서는 시품이 당대가 아닌 명대 초에 나왔고 저자도 사공도가 아니라는 설이 제기돼 한문학계에 큰 이슈가 됐다.
한문학을 쉬운 우리말로 소개해왔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시품의 내용과 시품이 동아시아 미학에 미친 영향, 최근 학계의 이론을 설명한 책 <궁극의 시학>을 냈다. 지난 9일 연구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서양철학, 미학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동양 미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싶었다”며 “10년 전부터 자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근대 이전 동양문학의 근본은 ‘시’입니다. 미학의 근본도 시에서 출발했고요. 시에서 희곡론, 소설론, 글씨까지 나옵니다. 과거에 시를 어떻게 봤느냐를 알면 동양인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기본 미의식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시품이죠. 시품은 시에 관한 비평서인데, 여기서 품은 품질이라는 뜻입니다. 시의 품질을 24개로 나눈 겁니다.”웅혼(雄渾ㆍ영웅의 품격), 충담(沖淡ㆍ선비의 담백한 미학), 함축(含蓄ㆍ하지 않고 말한 시), 정신(精神ㆍ사물의 핵심을 싱싱하게 표현), 소야(疏野ㆍ거친 것과 시골티의 미학) 등 시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24개 주제에 48자로 답변한 시품은 본문 전체가 1,152자에 불과하다. 짧고 여운이 강해 그 자체가 시처럼 읽힌다.
근대 이전에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베트남에서도 이 시품에 특별 대우를 했다. 안 교수는 “시품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많이 읽혔고 정선과 신위, 김정희와 조희룡 등 많은 시인들이 시품을 예술활동의 기준으로 삼았다”며 “시품은 시뿐만 아니라 글에 담긴 ‘화의’ (畵意ㆍ그림을 그리려는 마음)또는 ‘시적 풍경’ 때문에 서예, 인장, 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건륭제의 명으로 반시직(潘是稷)과 장부(蔣溥)가 각각 시품의 24개 풍격을 그림으로 그려 제작한 화보를 비롯해 청말 제내방(諸乃方)까지 중국과 조선에서 모두 네 명의 화가가 시품화보를 제작했다. 조선에서 제작된 화보는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서예가 이광사가 글씨를 쓴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이다.
강 교수는 시품의 제작 연대를 명대 초로 보고 있다. 청대 유명출판사 편집자가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품의 저자를 사공이라 표기했고, 작자 미상과 사공으로 병행 표기되다가 건륭제가 사공으로 저자를 확정하면서 현재까지 그대로 알려졌다.
시품의 연대가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중국문학사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시품의 제작연도를 당대로 보면 소동파(蘇東坡) 등 북송 시인들이 시품에 영향을 받은 것이 되고, 명대 초로 보면 이 작품들에 특징을 시품이 정리한 격이 됩니다. 중국문학사의 전후가 바뀌는 셈이 되는 거죠.”재작년 한 해 동안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한 후 1년 반 다듬어 낸 책이다. “마감에 쫓길 때는 몇 번씩이나 연재를 후회했다”면서도 안 교수는 다시 인터넷 연재를 준비 중이다. ‘댓글 제보’ 덕에 장부와 반시직의 시품화보를 찾아 책 내용을 보완하는 등 쌍방향 소통의 매력에 자꾸 끌리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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