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주로 이주하는 박윤수 선배의 송별연에 참석했다.
송별연 답사에서 박 선배님는 “내 인생이 남들을 위한 봉사생활 이었다지만 결국 나만을 생각한 인생을 이제껏 살아왔는데, 이제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나 내자(아내)를 위한 삶을 살려고 27년을 살아 온 워싱턴을 떠나 병후 조리에 좋다는 따뜻한 서부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콧등이 시큰해졌다. 중부 내륙 오하이오 주에서 32년 거주하다 27년 전 워싱턴 지역으로 이사 올 때 다시는 봉사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부인이 내민 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안됐을 정도면 봉사생활의 정신과 실천으로 중무장된 분 이었음을 가히 짐작이 간다. 이 대선배님은 봉사를 하기로 작정하면 철저히 성심껏 온몸과 마음을 받쳐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 하곤 했기에 어디에서나 이 분의 참여와 지도를 강청할 정도였던 것은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많은 분들이 인정한다.
그는 1950년대 초 미국에 유학 와 고체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우리들에겐 당시 생소한 반도체 분야를 연구 개척하여 세계적 과학자의 반열에 오름은 물론 산·학 협동의 선례로 한국의 반도체사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솟은 배경의 숨은 주역이 됐다.
마음만 먹었다면 부자 됨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며 귀국하여 공직을 원했다면 높은 공직을 못 맡았을리 없었겠지만 그러한 것들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오직 봉사의 정신으로 한미장학재단 장학기금 확보를 위해 고국의 유수 기업들을 찾아다니느라 노구를 이끌고 그 먼 고국 장거리 여행을 수없이 한 것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일에도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체면은 뒤로 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성공적 끝맺음을 하게끔 한 것을 관계했던 분들은 다들 알고 있다. 일에는 관심 없고 명예만 쫓는 인생들과는 격이 다르신 분이다.
해외 한국인들의 결속과 지위 향상은 물론 특히 자라나는 후세들의 교육과 주류사회 진출에 주춧돌 역할을 한 헌신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다.
부디 건강하시고 서부에서도 행복한 제2의 삶을 사시기를 기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