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화 ‘명량’을 보았다. 수준 높은 영화로 관람을 즐겼다. 그러나 나의 집 사람은 좀 달랐다. 집 사람은 혈압약을 항상 복용하며 아침이면 혈압을 재는데, 영화 관람 다음날 아침 혈압이 평시보다 꽤나 높아졌다고 불평을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 시간 정도쯤 계속되는 죽이고, 죽고, 사람 목을 덜컹 자르고, 그리고 목을 걸어두고 하는 장면들이 잠재의식 속에 계속적으로 스트레스로 쌓여 간 것 같아 혈압이 높아진 것 같다며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이곳 미국에서 까지도 그러한 이야기를 하다가는 모든 한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환호하고 있는데, 너는 한국사람이 아니냐 하면서 흘겨 볼 것 같고, 비난을 받을 것 같아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이해는 한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 세월호, 윤 일병 사건 등을 필두로 해서 세월호 특별법인지 무엇인지 하는 것 중 그 무엇 하나 속 시원 하게 풀리는 것이 없어 답답한 이때에, 누구한 사람이 나타나 이 엉클어진 것을 단 칼에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을 바라고 그 영웅의 모습을 이순신 장군에서 찾아보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의 영웅은 알렉산더 대왕으로 부터 징기스칸, 청나라 누루하치,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2세 정도에서 끝난 것이라 나는 생각 한다. 그리고 그러한 그 영웅들의 출현은 사람들이 국가, 시민의식이 별로 없었던 시대이라 출현이 가능 했을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의 출현 시에 이르러서는 영국,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국가관, 시민관이 형성되기 시작 했으므로 나폴레옹은 절반의 성공과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고, 히틀러는 악의 화신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쾌도난마의 기상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영웅들의 모습이 있다. 나는 그들이 아브라함 링컨, 인디라 간디, 넬슨 만델라 같은 사람이라 생각 한다. 그리고 그 분들은 모든 것을 한 칼에 해결하는 분들도 아니고, 남에게 강요하거나 앞장서서 시민들을 이끄는 타입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자기는 한 번도 유명해 지기를 바라지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했을 뿐이라 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영웅들의 모습에서 배우고 깨닫고, 스스로 한 걸음 높아져야 하며, 그러한 귀감이 되는 새로운 모습의 영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순신 장군은 그러한 새 영웅의 한 분이라 생각하며 그 분의 그러한 모습을 그분의 생애에서 찾고 그리고 그 모습을 좀 더 조명해야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어디까지도 영화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 ‘명량’ 이 이왕 현재의 영웅 찾기까지 온 듯하니, 내 생각으로는 영화에서 전투 장면을 좀 줄이고, 백의종군 하는 역경에서의 모습,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 받고 전라도 땅으로 가면서 다시 재기 하려는 그 시련의 모습을 좀 더 할애 했으면 하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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