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가 썼던 상형문자로 당신의 이름 써 드릴게요. 어떤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한 젊은이가 팔을 잡아끈다. 난 구경꾼. 귀가 솔깃하다. 돈벌이 나선 아이들, 갖가지 물건 들고 따라다니는 여인들, 싸고 좋은 내 물건 한 번만 보라며 잡아끄는 상인들…. 구경꾼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지만 난 될수록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 그녀가 사용했던 상형문자…. 장삿속은 뻔하지만 나를 끌기에는 만점이다. 결국, 집안식구들의 이름자를 상형문자로 그려 받았다.
“나폴레옹 전까지는 상형문자를 아무도 해독 못 했지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때 데리고 다녔던 수학자, 퍼리어가 비문에 새겨있는 글을 베껴서 보관하고 있었답니다. 거기엔 같은 글이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희랍어를 알던 퍼리어의 하인이 알아내게 된 겁니다.” 안내인의 설명이었다. 내 이름자인지 클레오파트라라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집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형문자라는걸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 수학자도 데리고 다녔나? 그런데 이 수학자는 희랍어를 아는 하인이 있었나?” 하고.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오늘. 걸핏하면 TV에선 “여름 여행 동안 한국어, 일본어를 배우려면 로제타 스톤이 제일이라” 고 떠든다. 수년 전 이집트서 구했지만, 지금은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내 이름자 생각이 나 로제타 스톤과 퍼리어를 찾아봤다. 퍼리어의 하인이었다는 샹폴리온도 찾았다. 안내인 말처럼 샹폴리온이 퍼리어의 하인은 아니었다. 구글 덕에 안내인의 설명보다 더 잘 배운 셈이다.
쟝 프랑스와 샹폴리온은 가난한 집안의 일곱 아이들 중 막내였다.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혼자 글을 터득한 형, 쟈끄한테서 글을 배웠다고 한다. 형은 수학자 퍼리어가 (주)지사였던 그레노블에서 일하고 있었다. 형은 동생 같은 어학의 귀재는 아니었지만, 생활력이 좋아서 평생 동생을 뒷바라지해 주었다고 한다. 동생은 16살에 이미 12개 이상의 언어를 터득했고 20세에는 그 외에도 10개 이상의 언어를 더 말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귀재다. 특히 고대 이집트어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발견되어 혜성같이 부각한 로제타 스톤을 해독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열을 올리고 있었던 시절이다. 일부가 깨어져 나간 비석에 세 가지 언어로 같은 글이 쓰여 있는데 고대 이집트어로 쓰인 글만은 알 수 없었으니 당시 학자들이 얼마나 열불 올리며 덤볐을 터인가?
샹폴리온도 이를 깨치기 위해 1808년부터 노력했다고 한다. 그가 드디어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폭넓은 언어 실력, 특히 그가 이미 갖고 있었던 고대 이집트어의 실력 덕분이었으리라. 드디어 1822년 그는 로제타 스톤의 해독을 발표하였고 따라서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베일을 벗고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문자로 다가오게 되었다. 상형문자(hieroglyph)는 소리 나는 대로 쓰는 음성문자(phonetic)와 표의 문자(ideographic signs) 의 합성어(?)라고 한다. 덕분에 크게는 피라미드 속에 쓰여있는 파라오의 글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작게는 이집트 구경하러 갔던 내 이름자도 상형문자로 그려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 후로 샹폴리온은 고대 이집트 연구에 빠져 이집트에 가서 연구에 연구를 계속하다가 지치고 탈진하여 4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피라미드 속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와 나폴레옹, 모두 다 갔다. 수학자 퍼리어도 가고, 로제타 스톤의 비밀을 깨친 샹폴리온도 가고. 정작 주인공(?) 로제타 스톤 자체는 이집트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닌 대영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오늘 저녁에도 텔레비전에서는 “짧은 시일내에 한국어를 깨치고 싶으신 분은 로제타 스톤에서 열쇠를 찾으십시오,” 하며 내 귀를 들썩인다.
<주: 나폴레옹은 포의 사격 거리 등등을 계산 해 줄 수학자를 대동하고 다녔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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