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명대사로 우리에게 웃음과 위로와 감동을 주었던 로빈 윌리엄스가 지난 달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6년전 만인의 연인이던 국민배우 최진실이 떠날 때만큼 큰 충격과 슬픔과 상실이다. 그가 평소 약물과 알콜 중독에 시달렸고 조울증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는 것이 심리상담사인 필자에게 더욱 큰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1990년 봄 대학 졸업반 시절, 공부를 가르치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후 그의 따뜻한 명대사들과 미소에 반해 그의 영화를 반이상 섭렵하는 열렬팬이 되었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살아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으렴. ‘난 독특하다’는 것을 믿는 거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어. 나만의 걸음으로 나의 길을 가는 거야.” 키딩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명대사들은 우울증과 자괴감에 빠진 청소년 내담자들에게 필자가 들려주는 격려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굿윌 헌팅>에서 내담자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해주던 심리상담사 숀의 대사 역시 죄책감으로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하는 내담자가 자신을 용서하도록 돕는 큰 힐링의 메세지다. 어찌보면 그의 대사들은 중독과 조울증으로 시달리던 로빈 윌리엄스 자신에게 건내던 간절한 치유의 메세지였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의 정신장애 보다는 우리가 매일 입고 사는 ‘역할’에 촛점을 맞추어 나누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참으로 많은 역할을 입고 살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애도사처럼 그는 이등병이면서 닮고 싶은 의사였고, 알라딘의 ‘지니’면서도 200년을 살고 죽음을 선택한 로봇이었고, 대통령이면서 피터팬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그 역할들을 벗은 후 현실로 돌아와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대부분의 그의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혹시 영화처럼 항상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 그리고 그 사이에 갇힌 무기력한 자신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알콜과 약물에 의존하다 결국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진 것은 아닐까?
‘산다는 것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라 생각 한다. 우리는 모두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고 산다. 가정에서는 부모이면서 자녀나 배우자의 옷을 입을 때도 있고, 직장에서는 상사이면서 부하이기도 하며, 선생이면서 학생일 때도 있다. 합당한 장소와 때에 합당한 역할을 입는 것은 참 중요하다.
때론 ‘직장 상사’나 ‘선생’의 역할을 가정까지 끌고 와서 배우자나 자녀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고 고치려는 이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군대식의 명령체계로 가정을 이끌려하다가 갈등이 심해지는 걸 경험한다. ‘사랑과 포용’ 위에 세워진 가정공동체는 옳고 그름과 손해득실의 사회 원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재정비하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상담 중에 직장에서의 역할이나 직업이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사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오랫동안 역할이나 직업이 ‘나’인줄 알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역할이 없는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그냥 ‘나’로 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무 역할이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냥 ‘내가 나’이어도 좋은 그 쉼 가운데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밭을 가꾸거나 뜨게질을 하거나… 아무 역할도 입기 전에 신나게 동네를 뛰놀던 그 때를 떠올리며 동심을 회복하고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 일을 찾아보자.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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