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우울하고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상처도 없을거 같아요.”
상담 중에 내담자들로부터 가끔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따뜻한 미소로 내담자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주고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나의 모습이 상처나 아픔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춰졌나 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산다는 건 매일 흔들리다 가끔은 심하게 넘어지는 것이고, 때론 지독한 외로움에 가슴이 찢기는 것이며, 어느 때는 예상치 못한 독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는 걸… 어느 누구도 이 사실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면 난 “오죽하면 몇년 동안이나 상담 공부를 했어야만 했겠어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상담 대학원에서 만난 적지 않은 동료들은 “자신이 가진 상처와 아픔이 상담 공부를 하게 된 동기와 원동력이 됐다”고 고백한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게 구타 당하며 자란 백인 친구, 동네 캔디 장수에게 성폭행 당한 흑인 친구, 몰몬교인이란 이유로 왕따 당했던 교수님, 부모의 이혼 후 버려져 미국에 입양된 한국계 친구.
심리학자 앨리슨 바 (Alison Barr)의 연구에 따르면 ‘74%의 상담사가 자신의 한 가지 이상의 상처가 결국 그들이 상담사의 길을 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상당수가 소위 ‘상처입은 치유자 (Wounded Healer)’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오직 상처 입은 자 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로 심리학자 융(Jung)이 처음 사용했다. 이는 ‘상담치료사 자신이 스스로 겪은 경험의 범위 안에서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뜻으로 그리스 신화 ‘케이론’ 이야기에서 유래된다.
(半人半馬)였던 케이론은 헤라클레스가 잘못 쏜 독화살에 맞고 상처를 치료하려 약초를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신 고통스럽고 치료할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무리에서 벗어나 동굴에 은거하며 상처 치유를 위해 애썼으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차라리 죽기를 원했으나 죽을 수도 없는 존재였다.
케이론은 상처로 인한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려 하루하루 치료법을 찾으며 보냈다. 들판을 헤매고 다니다 그는 약초와 풀의 약효를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주위의 피조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데 귀를 기울였다. 고통 속에 사는 삶이 어떤지를 충분히 알게 된 그는 다른 이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약초의 효능에 대한 지식도 커졌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상담 중 상담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지만, 상담사의 비슷한 경험이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에 도움이 될 경우에 한해 ‘자기 표출 (self-disclosure)’을 허용한다.
2년을 만나온 내담자의 솔직한 고백이 떠오른다.
“선생님도 옛날에 우울증과 강박증, 불안장애와 분노폭발 등을 겪었다고 말할 때, 죄송하게도 저는 속으로 참 신났었어요. ‘와! 선생님도 나처럼 불안장애가 있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환해지며 희망이 싹트는 걸 느꼈어요.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처럼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는 거죠?”
“그럼요 ! 내 상처가 제일 커 보이고 나만 실패하고 좌절한 듯 보이나 실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상처 입은 치료자’라는 용어는 ‘상처를 가진 사람’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다시 쓰자면 ‘상처를 입고 치유된 사람’이다.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또한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많은 상처를 입으나 그 때마다 그 고통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고 다른 이의 아픔을 더 공감할 수 있는 ‘치유된 치유자’의 삶을 걸어가는 일. 그 일이 어찌 상담사에게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나의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다니… 참 감사할 따름이다.
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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