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돌잔치 사진가운데 ‘고추’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는데 6.25전쟁 피난 중에 잃어버렸다. 그때만 해도 사내 애기들의 사진을 이런 식으로 찍었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그 ‘고추’ 귀엽다고 말하며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네 살 때 집 앞에 강냉이튀기 아저씨가 왔다. 내 또래 아이들이 둘러서서 흩어진 강냉이를 주어먹었다. 아저씨가 내 ‘고추’를 만지면서 “얼마나 컸나 보자” 하며 강냉이를 한 웅큼 쥐어 주었다. 그 시절에는 이러한 풍경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언제 이런 풍속들이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한국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76세 된 P할아버지가 지난 11일 원주시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 중 캐디로 할아버지를 도와주던 23세 A아가씨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성추행 혐의라는 ‘사고’를 쳤다. A양은 라운딩 도중 이 ‘사고’를 사무실에 보고하고 캐디서비스를 도중하차했다. 양측이 주장하는 사고내용이 다르다. A양은 ‘뒤에서 껴안고 카트에서 허벅지도 만졌다’고 하면서 이는 분명히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P할아버지는 ‘손녀 같고 예뻐서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을 뿐이지 성희롱은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P할아버지 말대로 ‘손녀 같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그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인 것을 말이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고추’를 만졌던 시절을 상기하고 그랬는지 모른다. 그 후 P할아버지가 사과를 하고, A양이 이를 받아들여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그런데로 다행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측은 이 사건이 성추행 혐의기 때문에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국회는 지난 해 6월 성범죄 관련법을 개정, 성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P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법을 가장 잘 아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프다. 그는 명문 S대 법과를 졸업, 고시를 합격하여 법을 일선에서 집행하는 검사를 지내다가다 법 행정의 최고직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후 국회의원에 당선, 정계에 몸을 담다가 국회의장직에 까지 오른 명사다. 그런 분이면 아무리 과거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행위이며 그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희롱이 아니겠는가? 한 번 생각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1970년대 미국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참고자료를 찾는 것을 도와주는 참고도서 사서로 일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한 여학생이 나에게 한 남학생으로부터 2층 서가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보고를 했다. 그래서 그 여학생과 2층 서가에 있는 가해자 남학생을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측의 주장이 달랐다. 남학생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여학생의 허리를 껴안았다고 주장하는 한편, 여학생은 교정에서 서로 몇 번 만났을 뿐이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서로 잘 화해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내가 이 일을 잘 못 처리한다고 불평을 하며 경찰에 알리겠다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 사건을 도서관 관장에게 보고했다. 관장은 바로 캠퍼스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바로 이 두 사람을 사무실로 데려 갔으며 수사를 펼쳤다. 결국 학교당국의 중재로 이 문제는 원만히 해결됐으나 나는 미국에서 성희롱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지를 처음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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