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하고 마지막 그루터기가 지축을 울리며 쓰러지는 소리에 나무꾼들은 환성을 올리고 있었지만 달리 그 소리는 비명의 괴음으로 변해 나의 가슴을 울리면서 절로 눈물이 났다.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도 비참하고 가련하였기 때문 이었다.
매년 6월이 되면 누구보다도 일찍이 싱그러운 푸름을 가지에 안고 봄이 왔음을 속삭여 주었고,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한 여름에는 서향 집인 우리 집을 그의 넓고 풍요로운 가슴으로 감싸주었던 우리 집 도토리나무. 공중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오른 높은 키에 겹 가지도 보기 좋게 펼쳐있는 일품 도토리 나무요, 이웃에게는 서늘한 그늘을 나눠 주던 한 그루 거대한 로뎀나무 이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가을대로 몇 톤이나 되는 단풍잎을 어깨에 메고 마을에 군림하여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그가 이제 몇 토막의 조각으로 잘리어 트럭에 실려 어디론지 사라져 가고 있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6월은 찾아 왔건만 어쩐 일인지 새싹의 상태가 신통치 않았고 7월이 되어도 녹색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나무 전문가를 부르기로 했다. 그의 의견인즉 뿌리를 덮고 있는 멀치(Mulch)가 너무 과다하다는 것이었고, 결국은 나무를 잘라야 할 것이라면서 견적서 한 통을 놓고 간다. 내 눈을 의심할 정도의 대금이었으나 그가 말한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감도 갔다. 혹시 살아날까 하는 기대감에 나는 서둘러 나무 둘레에 진을 치고 있던 진달래 나무들을 베어 버리고 멀치를 파내 헤쳐 보니 뿌리는 퇴색된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혹시 라는 기대감은 요행을 바라던 망상이었다. 재활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잘라 버리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하긴 재생의 기회를 내년으로 미루는 생각도 하였지만 동네 시선이 따가웠다. 몇 번 망설이다 내린 아쉬운 결단이었다.
나무 베기는 이틀에 걸친 큰 작업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그루터기는 물경 직경이 35인치나 되니 웬만한 식탁 크기만 하다. 일꾼들도 가고 나무토막들을 실은 큰 트럭도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나 지금 홀로 남아 그가 남긴 그루터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가을 들어 귀뚜라미 뛰고 찌르라미 울기 시작하면 도토리 알이 몇 개씩 떨어지면서 도토리 교향악의 연주가 시작된다. 토닥토닥하는 드럼소리가 울리면 도토리들은 일제히 나무에서 소낙비 같이 쏟아져 내리면서 광란의 랩소디 연주를 하는가 하면 적당한 간격을 둔 후 잔잔한 세레나데 곡으로 이어지는 이 교향악이 몇 번이나 반복 연주 되었는지 날이 새고 아침이 되면 아스팔트 보도는 온통 도토리들로 깔려있다.
출근길엔 색다른 연주곡이 울려 나온다. 도토리 알이 자동차 지붕을 때리면서 울리는 작은 드럼 소리와 자동차 뒷바퀴에서 터지는 팝콘 소리로 화음을 낸다. ‘팝팝 팝팝’ 신명 나는 하루를 예고해 주던, 지난날의 추억들이다.
우물에 떨어지는 두레박처럼, 빠른 가을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있는데 냉기 마저 느낀다. 한시 몇 줄이 머리에 떠오른다. “一寸光陰不可經/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己秋聲” 젊은이 들이여 시간을 아껴 쓰라/ 연못에 앉아 꿈꾼 춘몽 아직 가시기도 전에/ 뜰 앞에 오동나무 잎이 벌써 가을을 알리는 구나.
일찍이 솔로몬 왕도 40세에 이 세상을 떠나면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며--“라며 인생무상을 성경에 담아 놓았다. 지상의 만물은 영원한 것이 없고 삼라만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때나 저때나 미래를 뚫고 가는 영겁의 시공에도 변치 않는 영원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아듀, 나의 친구 도토리 나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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