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달리는 차창에 빗방울들이 살포시 닿는 이른 아침, 우리는 버지니아 리스버그로 가는 길을 향해 달리고 있다. 12살 손녀 예린이가 달리기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고 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이 아이를 여름 방학동안 제 아빠가 직장 나가기 전 매일 새벽에 달리기 연습을 시켰다. 중학생이 되는 첫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크로스 컨트리(cross country)팀에 가입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운동에 재질이 없다. 아빠의 극성에 4살에 시작한 축구 경기에는 공이 자기에게 오면 열심히 피해 다니가 한 번 찬다는게 남의 골네트에 집어넣어버리는 아이다. 그러나 그 아빠의 끈기와 노력은 결국 학교 달리기 클럽에 넣은 것이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VA에 있는 패트릭 헨리 칼리지를 찾았을 때는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 세찬 비가 내리고 공기도 더 차졌다. 아무리 비가와도 번개가 치지 않는 이상 달리기대회는 진행 한다고 한다. 빗속에도 선수들은 각 학교의 유니폼인 짧은 팬티와 짧은 윗도리를 입고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에 중학생 선수들이 한 100명가량 모여 일제히 뛴다. 사진기를 들고 그 속에서 맨 끝 줄에 있는 손녀를 찾는다. 제일 뒷줄에서 뛰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제법 폼을 잡으며 뛴다. 우산을 든 부모, 그냥 재킷만 입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뛰어나올 코스를 따라 옮기며 아이들이 올 것을 기다리는데 한 아이씩 있는 힘을 다해 뛴다. 그 추위와 빗속을 최선을 다해 뛰는 진지한 모습에 코끝이 찡해온다. 이제 다 끝났나 할 정도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데 그때서야 우리 손녀가 포기하지 않고 걷지도 않고 뛰어 나온다. 신통하다!
심리학 교수인 엔더스 에릭슨이 천재들을 연구한 결과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 70% 땀과 그리고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 한 것이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그렇게도 운동에 재질이 없는 아이를 아빠의 격려와 끈질긴 연습이 이 만큼 뛸 수 있게 만든것을 봐도 그렇다.
이제 대회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 할 때에 먼 곳에 작은 모습으로 한 아이가 뛰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라인 뒤에 서 있던 부모들이 그 아이를 향해 “go, go! Let’s go!”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또래의 학생들이 그 아이를 향해 달려가 그 남자 아이와 함께 뛴다 부모들의 응원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응원해 주는 부모들의 마음가짐, 특별히 응원부대처럼 그 아이에게 다가가 격려 하는 팀, 참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귀한 장면이다 시야로 들어왔을 때 그 남자 아이는 하얀 얼굴에 붉은 홍조를 가득 띠고 폼은 흐트러지지 않고 서둘지도 않고 실망이나 부끄러움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뛴다. 꼭 일등으로 뛰어오는 모습이다
“아~ 바로 저 아이의 모습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의 속력으로 나의 최선을 다해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 참으로 귀한 모습이 아닌가. 그 아이는 초를 다투며 일등으로 들어온 아이보다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지막 코스에 돌입했다
파랑이 묻어날 것 같은 새파란 잔디밭에 우산을 받쳐 들고선 나의 마음속에 그 마지막 아이의 모습이 깊은 깨달음으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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