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부입니다. 사람이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뭣 때문에 사느냐고요?” 스님이 반문했다. “자식 있어요?” “딸 하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딸 아이는 왜 낳았어요? 애를 낳을 때는 사람이 왜 사는 것인지 알고 낳았을 것 아녜요?” “아니요.” “아니, 그러면 왜 사는지에 대한 답도 없으면서 자식은 낳았어요? 그런 질문 하려면 자식 낳기 전에 해야지 애는 낳아 놓고 이제 와서 물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답도 없이 애만 덜컥 낳아 놓고 나서 물으면 늦은 것 아녜요?” 법륜스님과 젊은 여인이 주고받은 일문일답이다.
나도 그랬다. 개똥철학 하느라 모자란 골통 열심히 짜 댔다. 실은 결혼에 대해서도 그랬다. 딱히 왜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없으면서 한 셈이다. (어쩌면 20대의 호르몬이라는 변수에 덜미를 잡힌 건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자식은 나한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 때문에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 더 끙끙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내 작은 소견머리 가지고는 아무리 쥐어짜 보았자 답이 나오질 않았다. 친구, 동창들은 거뜬하게 아들딸 잘 낳아 잘 키우는데 나만 남의 아이들 바라보는 신세 아닌가?
그때 나 스스로한테 최면 걸듯이 했던 소리가 있다. “세상 사람들 다 아이 낳고 사는 것 보면 자식 키우며 사는 게 좋아 그런 것 아니겠냐? 남들이 다 한다면 거기에 보편타당성이 있고 상식적인 진리가 있는 게 아니겠냐? 그렇지 않다면 왜 다들 고생하며 애 낳아 키우겠냐? 눈 감고 결혼에 뛰어들듯, 눈 감고 자식 낳는 것이 나중에 덜 후회하지 않겠냐?” 이런 식의 지론 말이다. 그리 미적거리다 늦게 아이를 본 셈이다.
나 역시 법륜스님이 들으면 “쯧쯧! 어쩌자고 아직껏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냐?” 하며 혀를 찰 것이다.
“자신은 왜 딸을 낳았는지에 대한 대답 없으면서 왜 태어났느냐, 왜 사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해요? 뻔한 것 아녜요?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요. 다람쥐도 토끼도 태어났으니 잘 사는 것 보세요. 사람도 같아요. 그리고 어차피 태어나 사는 건데 괴롭게 살 필요 없어요. 이왕이면 행복하게, 자유롭게, 즐겁게 사세요.” 법륜스님의 말이다. 스님이라면 속세에 사는 우리한테 ‘열심히 도 닦고 고행하며 살라.’ 무슨 이런 말씀 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즐겁게 살란다.
“인생은 길가의 풀과 같아요. 풀로 태어나서도 남에게 도움 줘요. 당신은 태어나 남에게 무슨 도움 줬어요? 남 해치지 말고 도움 주며 살면 되는 거예요. 나를 특별히 굉장한 존재라고 생각지 말고 사세요.”
나는 풀보다는 특별히 굉장하고 잘난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스님 말이 맞나 보다. 삶에 목표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일단 태어난 존재니까 사는 거란다. 남 해치지 말고 사랑하며 살면 되는 거란다! 그것이 바로 자유롭게, 또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 해치지 말고…”라는 소리가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남에게 해 끼치길 잘하는 인간이다. 도둑질 강도질만이 해 끼치는 것은 아니다. 착할(?) 때가 통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길가의 풀만도 못하다. 남에 대한 불평불만, 억울하고, 분하고, 샘나고, 속상하고, 등등으로 늘 지저분하다. 깨달음이나 해탈, 견성, 성불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왼뺨 친다고 오른뺨 내밀지 못한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답을 얻었다 해도 들여다보면 얻었다는 답이 답이 아니다. 깨달음과 나 사이에 놓인 넘지 못할 산, 건너지 못할 강이 언제나 발목을 잡는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가는데 이렇게, 이렇게 나 자신이 항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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