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은 얼마 전 종영을 한 ‘미생’이라는 드라마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나도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미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뜻도 모르면서 차곡차곡 보기 시작했다. 내가 미생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16국까지 방영되고 있어 다 끝나지 않은 드라마였지만 머리는 무언가로 된통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국 드라마에 그 흔해빠진 러브라인도, 출생의 비밀도, 재벌 2세도, 가난한 신데렐라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열광한다. 그 무엇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그 무엇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을 공감하게 한 것은 현장이 있는 현실감, 짧은 대화 속에 숨겨진 정곡을 찌르는 대사, 한편을 정리하는 나레이션 속에 깔려 있는 페이소스, 정의는 이렇다든가 신념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이라 설명을 하지 않아도 드라마 속의 인물 마다 나타내는 각기 다른 모습들이 아닐까.
드라마 속의 오 차장이 말하는 신념은 아버지로서 자녀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것은 조직의 이기 앞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아주 작은 것으로 무시해 버리는 현실 앞에서 그가 존재하는 이유의 작은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내가 소속된 조직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도전을 받게 될 때마다 그는 그의 신념을 고집처럼 되뇌인다.
우리는 나 외에 다른 사람, 내가 소속되지 않은 다른 조직이나 단체의 잘못된 것은 쉽게 비난이나 비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 내 자녀, 내 가족, 내 조직, 내 단체의 문제에 부딪치면 가치관이나 신념은 각자의 이기 앞에 제물이 되고 만다. 계약직 사원으로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 장그래는 ‘우리’라는 단어에 갈증이 나있다가 자신의 상사인 오 차장의 신념 안에서 자신이 우리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만 장그래는 개인적인 경험부족이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을 감안하지 못하고 덜컥 수를 내고 만다. 그의 덜컥 수는 정의의 편에서 누구도 잘못됐다고 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단체나 조직에 돌아오는 불편함이나 불이익에 그 정의는 초라해지고 생명력을 잃고 만다. 작가는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진 것들은 언젠가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지켜야할 선이 신념이든 정의든 그 가치관에 한편이 된 ‘우리’는 서로가 목숨을 걸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로 재탄생되어 보상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2년 전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몇의 교우들과 함께 작은 미국교회를 빌려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전제아래 많은 신념들이 경계를 넘나든다. 신념의 차이로 수많은 교회가 일어나고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다. 그들의 신념의 대상은 하나이지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갈라지기도 하고 다시 합의점을 찾아 합해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 많은 오류와 상처가 남고 신념이나 정의가 훼손되었거나 왜곡 되었어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 혹은 죄악성으로 자위하거나 그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는 커튼에 가려버린다.
드라마 ‘미생’에서 작가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통해 드라마 속 오 차장의 신념과 장그래가 그리고 싶어 하는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선택이든 결과로 이어진다. 내가 선택한 길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갔었거나 가고 있는 길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일 수도 있다. 어느 길이든 택하지 않고 가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먼 훗날 내가 택한 길에 어떤 이정표가 붙을까? 그 길, 그래도 마지막 지켜온 신념의 끝자락에 하나님의 뜻이 잇닿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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