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여 모든 국민이 산업역군이 되었던 그때,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 붐을 타고 기업인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현지에 산업 전초기지를 만들고 있었다.
나의 친구였던 손 사장도 당시 독일에 주재하면서 유럽산 해외건설 자재 및 중장비 기자재들을 자신의 독일 현지회사를 통하여 중동 각국으로 수출한 결과 신흥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부자가 된 그를 보는 독일인들의 질투심과 견제가 생활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연장하는 가족들의 체류문제, 독일인 직원에 대한 처우문제, 심지어는 사는 집의 창문에 거는 커튼의 모양과 색깔까지 시시콜콜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 고통을 참다못해 자신의 회사를 파산하고 독일보다는 외국인이 살기에 조금 덜 까다로운 영국 런던으로 오게 되었다. 사실 영국도 독일보다 별반 나은 것이 없었다. 단지 영어로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 외에는 대동소이했다.
영국에서 이방인이 사업을 시작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런던에서 식당업을 10년 이상이나 하고 있었던 한 식당 주인에게 그 고충을 들었다. 개업신청을 시청에 했는데 수많은 까다로운 절차를 내세워 신청한 지 3년 만에야 겨우 개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영국보다 더욱 심했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 가서 웨이터에게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면 영어를 알아들으면서도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중동의 아랍국가에서 들어온 아랍인들은 부모와 자식의 대를 이어 이방인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영주권을 받아 대학을 나왔어도 말단 공무원이나 중소기업 등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들을 반기지 않았다. 대학 졸업생이 수퍼마켓의 파트타임 노동자나 건설현장의 잡부, 시골농장의 농부로 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지난 백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 내일에 대한 희망 없는 삶의 고통 속에서 살면서 쌓여진 분노는 그들의 상전인 모든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유대인들도 함께 몰아 기독교인들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표방하고 테러를 자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랍인들의 민심이 노도처럼 폭발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나는 이민국가인 미국의 체제와는 달리 프랑스인들이 이방인들에게 행한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차별에 기인한다고 본다. 더욱이 600만 명에 가까운 아랍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호, 불호를 떠나 프랑스 국가의 미래발전과 평화를 위해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한다.
한국의 사정도 프랑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수많은 재벌들의 만행으로부터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불의인 줄 알면서도 말한 마디 대꾸도 못하며 숨도 못 쉬고 갑(甲)의 눈치만 보고 사는 힘없는 을(乙)인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차별적 횡포가 해가 갈수록 점점 타성화 되어, 이제는 이러한 사실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파급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온통 막되먹은 갑들과, 갑의 노예로 변모한 을들로 갈라져 첨예한 갈등 속에 을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으로 달려가고 있다. 자유민주의의 법치 하에 있는 나라에서 갑질의 발밑에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정의를 논할 수 없는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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