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6.25 전후까지도 동네 아줌마들이 흔히 쓰는 욕 중에서 ‘애비 없는 호로자식’ 그리고 ‘화냥년’ 이란 말이 있었다. 사실 나중에 내가 커서 이 단어의 유래를 알았을 때 나는 분노를 넘어 조상들을 험오 하기까지 했다.
아시겠지만 병자호란 때에 우리 조선인들이 많이 잡혀서 만주 땅으로 끌려 갔다. 남자는 노동력이 필요해서이고, 여자들은 성노예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비없는 아이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나 하면 아무런 연관도 없고 또 잘못도 없는 이 청나라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아이들을 빗대어 ‘아비 없는 호로(胡虜: 청나라의 포로) 자식’ 이라 욕을 했다.
그리고 여자의 품행이 좋지 못하면, 청나라에서 풀려나서 고향을 찾아온 그 고달픈 사람 환향녀(還鄕女)를 빗대어 화냥년이라고 욕을 퍼 부었다. 사실 더 한심한 것은 나라가 백성을 지키지 못하여 그들이 고생과 치욕을 당하게 했으면서, 그들은 더렵혀진 몸이라 하면서 한양 땅을 밟지도 못하게 하고, 서대문밖 지금의 불광동 자리에 머물게 하였다니 참으로 조선조의 관리나 지배층, 그들이 인간인가 싶어 진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된 사회모순이 계속 이어져 왔다. 나는 일제 때에 소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참혹한 시절을 지낸 분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그 치욕을 말도, 하소연도 못하고, 욕을 먹을까 또 동리에서 내쳐질까 두려워서 소리 없이 살다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분들이 최소한 몇 천 명, 아니 어쩌면 수만 명 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사회 분위기에서 용감하게 커밍아웃해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할머니들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이러한 용기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 그리고 여성 상위 시대인 것처럼 착각을 주는 TV 드라마, 그리고 우스개 소리 등으로 화냥년 시대는 이미 옛날이야기 인 것 같지만 아직도 그 타성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너 성폭력 당했다는 것 알려지면 너만 손해이지 어쩔래, 밝혀지면 가정 파탄난다, 아직 시집을 안 갔으면 너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느냐’ 하면서 성폭력이 장막 뒤에서 꽤나 많은 것 같다. 나는 ‘그래도’ 했다가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법에 호소하는 비율이 8%라는 자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육군 사관학교를 나오고, 청와대 근무까지 했던 소위 엘리트 육군 대령인 모 여단장이 여자 하사를 성폭행 했다고 구속 된 모양이다. 그리고 별 셋의 예비역 장군이자 국회의원이며 군 인권개선위원인지 무슨 분과위원에 속하는 그분이 그 피해 여 하사를 ‘하사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홍역을 치루고 있다.
그런데 이 송 모 중장이 ‘하사 아가씨’ 라고 부른 것이 의도적이었을까 아니면 잠재 의식 속에서 나온 말일까? 그리고 ‘그래 도 성폭력 당한 것 알려지면 너만 손해지, 뭐 어쩔래’ 하는 생각이 몸에 밴 것이 아닌지?
이제 성폭력을 당하면 모두 다 법에 호소해라 하기 전에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분들이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그래서 의식 전환이 더 먼저 이어야 할 것 같다. 하사 아가씨 기사를 읽고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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