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야, 저리 가. 나 바쁘거든. 저녁준비 하잖아!” 발에 와서 엉겨 붙는 강아지를 큰 소리로 밀어낸다. 밀쳐내면 한두 발짝 떨어졌다가는 내 발길질을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그런 건 무시해도 된다 싶은 건지 다시 덤벼 내 발을 쓸고 핥으며 뱅뱅 돈다. 녀석은 발 구린내가 싫지 않나? 아니, 똥 냄새 킁킁 맡으며 바지런히 돌아치는 것이 개라는 동물인즉슨 오히려 구린 냄새가 더 구수한건가. 어쨌거나 바쁠 때는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라도 성가시다. 사람을 싫다고 나무라면 “웃긴다. 네까짓 게 뭔데?” 하며 싸우자고 덤비거나 삐쳐 사라질 텐데 강아지란 녀석은 내가 뭐래도 한사코 좋다고 물고 빨려고만 드니 알 수 없다. 밀쳐 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다시 녀석한테 뿅 가게 된다. 그래서 개를 키우나?
도마질하느라 움직이지 않고 가만 서 있으면 이때다 싶은지 내 새끼발가락에 코를 대고 길게 누워 잠깐 조용하다. 숨차게 놀았으니 쉬고 싶은 건지, 한숨 자려는 건지…. 녀석의 따스한 온기가 솔솔 발가락으로 흘러 온다. 그렇게 발가락 끝에 엎어진 꼴을 보면 아무리 바쁘다 해도 차 버릴 수가 없다. 아니, 발을 녀석의 코에서 떼기도 미안하다. 오히려 내게 경고의 메시지라도 보내는 기분으로 만든다.
강아지가 생기니까 애 하나 생긴 듯 모든 일이 복잡해지고 느려졌다. 저녁 역시 늦어진다. 남편은 당신보다 강아지가 더 우선권을 갖고 있다고 내다 버리던지 누굴 줘 버리라고 불평이다. “쳇! 나한테 그 백 분의 일도 안 하면서….” 강아지 갖고 노는 내 모양새가 남편 눈엔 마치 따돌림이나 당한 듯 서운한 모양이다. 내 소리에 친구들은 합창한다. “남자들은 다 그래. 수십 년 살다 보면 아무리 잉꼬라도 부부지간이란 것이 ‘개 닭 보듯 소 닭 보듯’ 하게 되니까 자기 소홀히 하나 싶어 그러는 거야,” 하며.
강아지는 아니다. 내가 눈이 셋인 괴인이라 해도 상관치 않고, 부자이건 거지이건 따지지 않고, 사장님이건 교도소 출신이건 묻지 않는다. 자신을 거두어 주는 주인 아줌마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날 빨고 핥으며 새끼발가락 하나만 잠시 빌려 달라고, 거기에 자신의 코를 더도 말고 60초만 쉬게 해 달라고, 그러기만 하면 당신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온갖 아양 다 떤다.
소변 제자리에 보지 않았다고 펄쩍 뛰며 야단치면 구석에 숨어 커다란 눈을 껌벅댄다. 죄인 흉내 기막히게 낸다. 끼잉끼잉 사죄(?)해 대는 꼴이 혼자 보기 아깝다. 펄쩍 뛴 나를 미안하고 머쓱하게 한다. 처량하고 불쌍한 생각 들어 다시 안아 주게끔 말이다. 이제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소위 개새끼 (꼬마야, 그리 불러 미안! 글 쓰는 사람의 사정 좀 이해해 다오!) 녀석이 어찌 환갑 진갑 다 보내고 이만하면 인생 살 만큼 살았다, 볼 만큼 봤다 자만하는 주인의 마음을 이렇듯 부여잡을 수 있을까. 내가 개 길들이고 있는 것 맞아? 아니면 개가 나를…? 영 헷갈리네.
녀석이 싸 놓은 오줌 똥 치느라 엎드려 씻어내고, 닦아내고, 걸레질하고, 소독약 뿌리노라면 울화가 치민다. 녀석이 노인을 부려도 분수가 있지… 싶어서. 참을 인자를 골백번 그리며 도를 닦는다. 열심히 운동시켜 내 몸 건강케 하라는 뜻이라 믿어야지. 그래야 오래 살아 저 녀석 죽기까지 돌볼 것 아니겠어?
강아지와 새끼발가락 대고 60초 동안 온기 나눈 값을 이렇게 톡톡히 치러야 하나? 어쩌면 이것도 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또 한 모습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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