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녀석 좀 봐. 이 구석에도 제가 살았단 표시를 해 놓았잖아? 자기 잊어버리지 말란 소리야, 뭐야? 정말 웃기네!” 개는 자신의 영토 표시를 위해 가는 곳 마다 소변을 찔끔찔끔 싼다. 때문에 강아지 시절에 대소변 가리는 걸 가르치는 건 필수다. 꼬마도 우리 집에 온 지 두 달가량 돼서는 자신이 싸야 할 곳에 싸는 걸 배웠다. 싸고 나선 “나 잘했죠? 상 주셔야죠,” 하며 뭘 주나 하고 내 손을 눈이 빠지게 지켜본다. 때로는 싸지 않고도 싼척하며 상 달라고 조른다. 그처럼 철없이 구는 짓거리가 귀엽고 예뻐 강아지 키우는지도 모르지. 꼬마가 간 지 보름도 더 지났는데 빨래방만 가면 야릇한 냄새가 나서 구석구석 뒤졌다. 웬걸! 그야말로 조그만 녀석이라야 기어들어갈 수 있는 자리에 영토 표시를 살짝 해 놓은 게 아닌가! 누렇게 변색한 타일이 아니었다면 모를 뻔 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도 이상타. 녀석이 남긴 표시를 지우느라 땀은 뻘뻘 흘려도 미운 생각보다는 “그래도 자기가 살던 자리라고…,” 싶어 애잔한 마음이다. “얘, 녀석이 오줌 싼 자리 보니까 왠지 찡 하더라. 개는 주인의 마음을 안다던데 내가 절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녀석이 알까?” 동생한테 전화했다. “언니! 그만해 둬.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지.” “맞아. 어린애도 부모 마음 모르는데 강아지야 말해 봤자 잔소리겠지.”
친구 순이가 많이 아파 보러 갔다. 가까이 살면 자주 가겠는데 멀어 자주는 못 간다. “성혜야, 넌 하나님 믿니?” 지난번 순이가 물었다. “철석같은 믿음은 없지만 그래도 신의 존재는 믿는 셈이야,” 하며 얼버무렸다. “난 믿어.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 보면 안타까워.” 그러는 순이의 말 속에 “신께서 왜 내 병을 고쳐 주지 않느냐?”는 원망의 뜻은 보이질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살겠다는, 그 외의 욕심은 버렸다,”는 그런 마음이 전해왔다. “그래. 네가 그리 믿으면 된 거야. 나도 너처럼 믿도록 할게.” 난 순이의 손을 꼭 잡았다. 순이 손이 따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순이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넌 하나님 믿니?” 하고 묻던 순이. 그 물음 속에 함축되어 있을 질문들을 이것저것 꺼내본다. 나 역시 순이가 믿고 있는 신께 대들고 따질 생각은 없다. “내가 왈가왈부해 봤자 철없는 강아지지. 강아지가 주인의 맘을 어찌 알겠어. 아니,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강아지와 주인에 비하겠어? 어림도 없지.” 그런 생각이 오가서다.
어렸을 때 줄지어 먹이 나르고 있는 개미 군대(?)를 동생하고 지켜봤었다. 그때 동생이 개미 한 마리를 집어 서너 발짝 떨어진 곳에 놓고 물었다. “언니, 이 개미는 자기가 어쩌다 이렇게 동떨어지게 되었는지 통 모르겠지?” “그걸 어찌 알겠니?” “지금 난 잘난 줄 알고 이렇게 용감무쌍히 살고 있지만 실은 나도 개미처럼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어쩌다 여기 있게 됐는지는 모르잖아? 그걸 궁금해 하는 우릴 하나님 보시기엔 귀엽다 생각지 않으실까?” 동생 말이 일리가 있다.
개, 개미, 나 같은 존재는 뛰어봤자 벼룩이다. 아무리 잘났다 해도 이차원, 삼차원에 산다. 그런 내가 20, 30, 하는 고차원의 세상을 어찌 알겠는가? 신의 차원을 내가 뭐라 왈가왈부 할 건가? 순이는 그런 신을 가까이 믿고 사니 큰 복이다. 빽이 든든한 거다.
신의 차원에서 본다면 인간이란 존재도 때로는 애처롭지만, 때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오줌싼 강아지가 한편으론 애잔하지만 사랑스럽듯. 틀렸을까? 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합리화일 뿐일까?
그래도 신께 떼쓰고 싶다. 평생 쉬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산 착한 순이, 아프지 않고 마음 편하게, 꽃피고 새 우는 이 봄을 만져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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