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페어팩스 동네의 주말아침은 잔디 깎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창문을 열면 풀 냄새가 싱그럽다. 나란히 선 콘도 마을 주위에는 잔디가 넓게 펼쳐 있고 잔디 밭 사이의 정원에는 꽃들이 철따라 피고 있다.
군인 머리처럼 산뜻하게 깎여진 잔디와 일정한 간격으로 정열된 꽃들이 어쩐지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말쑥하고 빈틈없이 정돈된 ‘차렷!’ 자세 같은 느낌이랄까, 그 탓에 발걸음은 힘차고 빨라진다. 잔디밭을 지나가는데 문득 발 밑에 잔디깎이 기계에 깎인 상처투성이 노란 민들레가 여기 저기 피어있다. 사람에게는 애물단지 잡초로 취급받으면서도 기를 쓰고 꽃을 피우는 그 억척스러움이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 하다.
얼마 전 리치몬드에 사는 동생네 집에 갔었다. 아름다운 호수를 낀 봄날의 이 마을은 동화 속 그림 같다. 집집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도와 나뭇가지도 보기 좋게 자르고, 꽃나무를 사다 색깔을 맞추어 가면서 나란히 심고 잔디 속에 잡초를 없애려고 제초제를 뿌렸다. 그러나 제초제에 강한 민들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 나는 민들레와 실강이를 하며 땅을 파헤치며 뿌리채 뽑느라 기를 썼다. 그리고 장미꽃을 파먹는 제파니스 비틀즈를 잡아내고 벌레약을 치고, 비료를 주고 그야말로 정원을 가꾸는데 동생과 함께 열을 올리고 경쟁을 하듯 정원을 가꾸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강한 집념 때문에 도리어 나무나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가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산책길 잔디밭에 오기 서린 민들레가 동생네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산책길 끝에는 조그마한 숲이 나온다. 골프장의 한 귀퉁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긴장감이 풀어진다. 상쾌한 공기, 아늑함과 여유로움이 그 숲속에 있었다. 마음껏 자란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 비취인 곳에 갖가지의 들꽃, 풀들이 흐트러져 마음껏 자라고 있다. 아! 거기에 다른 모습의 노랑 민들레꽃이 있었다. 그 얼굴이 어찌나 평화스러운지, 파란 잎이 나비같이 펼쳐 노랑 민들레꽃을 곱게 떠받치고 있다. 숲을 헤치며 민들레 곁으로 가서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 본 민들레! 화사한 노랑 민들레꽃, 얼마나 아름다운지! 파란 잔디밭 속에서 옥에 티 같은 존재였고 사람들의 푸대접으로 오기 돋게 만들었던 민들레가 새롭게 보인다. 사실 잡초라는 게 어디 있을까. 모두 특성을 가진 하나같이 귀한 식물인데 사람들의 편견이, 좁은 마음이, 이들을 차별한 것은 아닐까. 화사하고 평화스런 민들레꽃의 얼굴에서, 그 꽃의 온화한 미소 속에서, 뿌리까지 근절해야 한다고 땅을 파헤치며 민들레 박멸에 기를 썼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리 사물이 달라 보인다. 민들레의 꽃말인 ‘감사의 마음’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다툼이 없는 평화가 올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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