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갈수록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들 보다는 땅을 내려다보는 시간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들 보다는 뒤를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남의 삶을 훔쳐보는 시간들 보다는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 간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 ‘혹시 내가 헛된 삶을 살아 온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에 빠져 남모르게 괴로워 하기도 한다.
솔직히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인생은 짧다, 그러나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길다” 하며 우쭐거렸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자신감도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기만 했다. 이제는 “인생은 길다. 그러나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짧다” 하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기로 했다.
세월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강물처럼 여유있게 흘러가는 듯 느껴지더니만 나이 들어 갈수록 가속력이 붙기 시작해서 급류로, 화살로, 총알로 변해가는 것이 세월이었다. 세월이 어찌 나이를 차별이야 하겠는가? 시간의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함도 없을 것이다. 변하는 것은 시간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상대적인 속도다. 젊음은 나로 하여금 시간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어 뛰어갈 수 있는 능력을 허용 했었다. 그 펄펄했던 젊음이 시름시름 늙어가면서 기동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지금의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신세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니 시간의 속도가 나를 조롱하듯 총알처럼 날아가고 있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누구나처럼 젊은 시절에는 자나 깨나 ‘성공’ 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이고 살았다. 이왕지사 태어난 이 세상 시쳇말로 ‘짧고 굵게 살아보자’는 막가파식 꿈으로 가슴이 뜨거웠다. 그것도 잠시 스쳐가는 젊은 날의 일장춘몽. 세상 온갖 풍파에 시달리면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그런 ‘성공’ 에 대한 열망도 송대관이 불렀던 “쨍하고 볕들 날 돌아 온 단다” 유행가 가사처럼 추억 속의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버렸다.
성공에 대한 욕구는 결국 나의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삶에 대한 관심을 ‘성공’ 에서 ‘행복’으로 180도 바꾸기로 했다. 성공과 행복은 항상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것만 아니다. 오히려 각기 다른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경우가 많다. 추구하는 방향과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성공에 반드시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면 행복에는 일정한 목적지가 없다. 굳이 목적지를 따지자면 순간순간의 삶,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이 속도를 필요로 한다면 행복은 느긋한 여유를 필요로 한다. 성공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상세한 지도를 필요로 한다면, 행복에 필요한 것은 순간 순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적응력이다. 성공이 구속과 억제를 필요로 한다면 행복은 자유와 자율을 필요로 한다. 또, 성공의 결산서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온다면 행복의 결산서는 비교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존재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골치 아픈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동적으로 치료되고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들의 미움, 증오, 오해, 걱정들은 대부분이 심각성이 낳고 가는 백해무익한 쓰레기들이다. 그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가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인 시간이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 얼마나 위대한 깨달음인가?
죽음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헛된 삶을 살았습니까?”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의 선택은 Yes 와 No 밖에 없다. 아니, 우리들이 죽음 앞에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Yes 와 No로 대답을 하고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운을 잃은 한 마리의 개똥지빠귀를 둥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산 것이 아니리라.” 하는 디킨스의 ‘헛되지 않는 삶’ 론은 나 같은 죄인들에게 얼마나 귀한 희망적인 위로의 말인가. “한 가슴에 난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난 헛되이 산 것이 아니리라” 는 말은 그보단 좀 더 부담이 가는 일 일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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