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일찍 떠나고 싶니? 아니. 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맘껏 갖고 싶어…. 그런데 난 울고 있어. 모든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너무 짧아.” 마리나 키간이 ‘지나간 것들’이라는 시에 썼다.
읽고 또 읽어본다. 성숙한 글이다. 예일대 수석 졸업하고 일주일 되던 날, 아버지 생일파티에 가던 마리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22년의 삶이 끝나기 전, 학생 마리나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졸업하면 선망의 대상인 뉴요커 잡지사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녀가 쓴 단막극도 이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젊은이가 죽으면 우리는 그 청년이 일생 두고 할 수 있었던 많은 가능성이 사라진 것을 생각하고 비극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나는 이미 엄청난 것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글은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고 철철 넘쳐 흐릅니다.” 마리나가 존경했던 교수 앤 패디만은 그녀의 글을 모은 책 “외로움의 반대편” 서문에서 말한다.
패디만 교수는 마리나를 처음 보았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2010년 11월 10일, 제가 소설가 마크 헬프린을 예일대 초대석에 모셨을 때 입니다. 그때 헬프린은 ‘요즈음 세상에서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완전 불가능이다’ 라고 했지요. 한 학생이 일어섰습니다. 날씬하고 아름다웠어요. 불그스레한 긴 머리에 긴 다리. 요란스레 짧은 치마. 역동적인 에너지의 끼가 흘렀지요. 그녀가 헬프린한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그리 말하는 겁니까?’ 장내가 침묵에 빠졌지요. 누구나 그런 질문을 하고는 싶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묻지 못했으니까요. 그날 저녁 그녀한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패디만 교수의 글이다. “교수님, 오늘 질문했던 학생입니다. (헬프린처럼) 이름 난 작가가 ‘이 (문학이라는) 기업은 죽어가고 있으니 너희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는 말은 슬픈 멘트였습니다. 저희 같은 문학도들한테 문학의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이야기를 했어야지요.” 그 후로 마리나와 패디만 사이에 돈독한 사제관계가 형성되었던 모양이다. 마리나가 죽고 나서 그녀의 글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도록 이끈 사람이 패디만 교수다.
마리나의 글은 강한 지남철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역동적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가슴을 활짝 열어 내보이려 하는 모습은 너무나 솔직하다. “나는 질투심이 너무 많다. 믿을 수 없으리만큼 질투한다. 퓰리처 상을 받은 소설을 읽었을 때, 또는 오스카상 받은 영화를 보았을 때 ‘아, 나는 왜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싶어 미치겠다. 용서가 안 된다. 남들이 성공하는 것이 증오스럽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태양도 죽을 것이고 지구는 얼어붙을 것이다. 글로 남기는 것은 영구할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바보스런 짓이다.”
스무 살. 나도 한때는 욕심으로 끓었었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처지이면서. 그리고 많은 절망의 계곡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확 끌어당기는 글로 나 자신을 열어 보일 줄 몰랐다. 솔직할 줄도 몰랐다.
22살에 간 마리나. 그녀가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중얼거려 본다. “사랑하는 마리나, 네 말 맞아. 이 세상 모든 것 다 헛된 것인지도 몰라. 그래도, 짧게 살아 숨 쉬는 동안만이라도 너처럼 외로움의 반대편에 서 보려고 애써 볼 뿐인지도 모르지. 외로운 것만큼은 정말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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