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으로 4월 4일, 을씨년스럽게 아침비가 내린다. 우리 집 뒷마당 창가에 서 있는데 왠 참새 한마리가 내 눈 앞에 와 한참 날개 짓을 가삐하다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 아침에 참새가 내게 무슨 소식을 전해주려 왔는가. 상념에 잠겨있을 때에 한 얼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미소 띤 경암 스님의 얼굴, 아아- 오늘이 벌써 그 날, 어느 새 일년이 되었던가. 스님과 함께 이웃하며 삶의 희노애락을 이야기 하던 시절 앞에 어느덧 서 있다.
“최 신부님, 나 물러나고 나면 최 신부님 교회에 가서 하느님 한번 섬겨볼까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소리란 말이 있지만 그 소리는 분명 내게는 진담으로 들렸다(경암 스님이 불가에 입문하기 전 신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사람들은 왜 자꾸 우리들 더러 마귀라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자신들의 마음이 먼저 마귀 밭이 된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일 뿐 기독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부정하는 말 안해요.”
내가 드린 선물 성모님과 아기예수가 그려진 성화상을 보림사 사무실 문 정면에 걸어놓았는데, 한번은 한국서 방문 오신 한 스님 왈 “아니 왠 절에 기독교 성화상이 다 걸려 있습니까?” 하시더란다. 그에 대한 스님의 답은 “부처님은 저 그림을 벗으로 여기시는데 왜 스님께선 왈가왈부 하십니까. 저걸 치운다고 더 훌륭한 불자가 된답디까?” 한번은 성 프란시스 성공회에서 테제찬양예배가 있었다. 그런데 저 구석 끝에 스님께서 와 앉아계신 것이 아닌가. “신문 보고 왔어요” 하며 왠 족자를 건네신다. 열어보니 포도화였다.“포도는 축복의 상징이지요. 신부님 목회도 이 주렁주렁 열린 포도알처럼 번성하시길 바랍니다.”
불교는 우리나라와 무려 1천8백년 간 호흡해 온 종교다. 그리고 불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들 역시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나의 이웃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고로. 이웃 사랑에는 국경선이 없다. 해는 모든 이들을 위해 비추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해의 존재를 독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왜 교리를 공부하는가? 더욱 선명하게 하느님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이로운 공부인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가 만일 이웃과 타종교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독선적인 무기가 된다면 교리 공부를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교리적 이해 없이 순수한 마음과 정성으로 얼마든지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진 전재산인 동전 두 닢을 헌금한 과부가 무슨 교리 공부를 해서 또는 십일조에 대해 교육을 받아서 그리 했겠는가. 예수님이 왜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벗하며 생활 하셨겠는가? 그 숱한 비난을 받아 가시면서. 경암 스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워 한번 보림사를 찾아가 보고 싶지만 마음이 무거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스님 이후 보림사는 뜻밖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순수하고 어지신 신도님들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갈 때마다 정성으로 반겨주신 얼굴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침묵하고 있는 신도 간의 사랑이 다시 하나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그리워서였을까. 아마 이 메시지를 전해주시려 스님께서 이 아침 참새로 오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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